배명훈 작가의 장편소설 <<기병과 마법사>> 책리뷰
책장을 덮는 순간, 묘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배명훈이라는 이름 앞에 늘 따라붙던 'SF 작가'라는 수식어가 이번만큼은 어색하게 느껴졌거든요.
처음 그의 글을 만난 건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이었습니다. 과학과 상상력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그 세계에 완전히 매료되었죠. 『타워』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이번 신작 『기병과 마법사』를 손에 들었을 때도 당연히 우주선이나 로봇, 아니면 최소한 시간여행 정도는 나올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제목 그대로 기병과 마법사가 등장하는, 그야말로 정통 판타지였습니다. 마치 작가가 "이번엔 좀 다른 걸 해볼게요"라며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것 같았어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폭군의 조카인 영윤해가 변방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왕족의 체면치레용 파견이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기병 다르나킨과 함께하게 되는 여정은 단순한 변방 수비를 넘어서는 거대한 모험으로 이어집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엔 소라울의 폭군까지 상대하게 되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러 마법사들과 힘을 합쳐 세상을 위협하는 거대한 파괴자까지 물리치게 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초반 몇십 페이지는 좀 헤맸습니다. "이게 뭘 하려는 거지?" 싶었거든요. 배명훈 특유의 치밀함은 여전했지만, 어디로 흘러갈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창시절 몰래 읽던 무협소설의 그 짜릿함이 되살아나더라고요.
아, 이 느낌! 주인공이 위기에 몰렸다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상황을 뒤집는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 말입니다. 전투와 마법이 난무하는 세계였지만, 그 속에서도 배명훈다운 섬세한 심리 묘사와 깊이 있는 사유는 그대로였어요.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았던 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였습니다. 영윤해와 다르나킨, 그리고 수많은 마법사들이 각자의 힘을 모아 거대한 악에 맞서는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가 지난해 겪었던 혼란스러운 시절이 떠올랐어요.
혼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대한 적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연대하는 모습. 이게 혹시 작가가 그 어둠의 시간들을 지나며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니었을까요? 때로는 판타지라는 형식을 빌려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물론 이런 해석이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요. 읽는 이의 몫이기도 한 것이 문학 아니겠어요.
배명훈이 이번에 보여준 변신은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SF에서 판타지로의 장르 이동이 어색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거든요.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세계를 펼쳐 보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