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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 May 30. 2023

할머니 꿈 이야기



  꿈에 간간이 할머니가 보인다. 돌아가신 직후엔 하루가 멀다 하고 나타났는데, 어느덧 18년이 흐른 요즘엔 잊을 만하면 찾아오시는 정도랄까. 가장 최근에 할머니 꿈을 꾼 것도 서너 달 전쯤이지 싶다.

  꿈속 할머니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암과 투병하기 전, 정정하던 때의 모습 그대로거나 누가 봐도 중병을 앓는 이의 쇠약한 몸일 때도 있다. 내가 한 번도 실제로 본 적 없는, 사진에서나 봤을 법한 젊은 시절이 보일 때도 있고. 신기한 것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날 때마다 나는 그게 꿈이라는 걸 대부분 인지하고 있다는 거다. 할머니가 보이는 걸 보니 이거 꿈이로구만, 하고. 하지만 때때로 할머니의 모습과 음성이 너무도 생생해서 꿈인 걸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된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할머니 몸 구석구석 암세포가 활개치고 있을 것이므로. 저러다 갑자기 피라도 토하시는 건 아닐까,―나에게 ‘암 환자’가 가지는 클리셰란 ‘각혈’이니까― 조마조마해지기도 한다. 그나저나 엄마, 아빠는 왜 할머니를 병원에 모시지 않는 거지? 할머니를 저렇게 방치하다니, 나쁜 사람들…. 할머니가 불쌍해서, 부모가 원망스러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답답해서 엉엉 울며 잠에서 깨곤 했다.


  하루는 꿈속에서 대놓고 엄마에게 따져 묻기도 했다. 할머니 온몸에 암세포가 퍼지도록 엄마, 아빠는 뭐했냐고, 병원에도 안 모셔가고 왜 저대로 두느냐고…. 움푹한 눈으로 날 응시하며 내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엄마는 불현듯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왜 그걸 나한테 따지니. 할머니 자식은 아빠 아니니. 그 모든 게 다 내 탓이라는 말이냐. 나도 할 만큼 했다. 정작 우리 엄마 아픈 건 뒷전에 두고서…. 피로와 분노, 억울함이 가득 고인 엄마의 눈을 바라보다가 또다시 눈물이 터졌다.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너무너무 불쌍해서 꺼이꺼이 울어 버렸다. 베갯잇은 이미 축축이 젖어 있었고, 꿈이란 걸 안 후에도 한동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사실 그날은 친한 언니 네에 다녀온 날이었다. 언니의 시어머니는 몇 년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나날이 악화되는 중이었다. 비혼의 아주버님이 간병휴직을 하고 노모를 돌보고 있는 상황인데, 하루는 시댁에 갔더니 욕실에서 노모를 씻기며, 언니 들으라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더란다. 언니 내외―엄밀히 말하면 언니―가 노모 간병에 무심하다는 불만에서였다. 언니 내외는 맞벌이 부부였고 시댁과 두어 시간 거리의 지역에 살고 있었으며, 정작 이 병원 저 병원 모시고 다니며 치매 진단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은 언니였는데도 말이다. 가족 간병의 일차적 책임을 으레 여성에게 돌리는 현실, 시부모 봉양의 주체로 아들보다 며느리를 앞세우는 부조리함에 대해 실컷 울분을 토했던 바로 그날 밤, 나는 그런 꿈을 꾼 것이다. 한데 나는 왜 아빠가 아닌 엄마를 원망의 표적으로 삼았는가, 그것도 꿈이라는 무의식에서. 아닌 게 아니라 엄마는 정말로 할 만큼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일 년간의 병수발은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으니까. 특별한 용건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다정하게 구는 것으로 사죄를 대신했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종종 내게 말하곤 했다. 나 죽으면 갑갑하게시리 땅속에 묻지 말고, 강이나 바다에 가서 훨훨 뿌려다오. 할머니 왜 자꾸 그런 소릴 해, 라고 펄쩍뛰면서도 내심 생각했다. 그래야겠지, 할머니가 원한다면. 하지만 할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아빠는 전통 방식인 매장을 고수했다. 일말의 고민도 없어 보여서 할머니가 나한테만 그런 말을 했나 싶었다. 내가 아직 어려서 할머니의 본심을 알아채지 못한 걸까 헷갈리기도 했고.

  할머니가 원한 건 산분장이었노라고 말 한 마디 해볼 짬도 없이 장례 절차는 빠르게 진행됐다. 장지는 높은 산 중턱에 자리한 천주교 공동묘지였다. 끝 간 데 없이 올라가는 영구차에 앉아 나는 멀미를 했다. 산 전체가 온통 무덤투성이였다. 벌건 속살을 드러낸 채 끝없이 들이닥치는 망자들을 가까스로 품어내는 산을 보고 있자니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나는 여기 싫어, 싫다고 했잖아. 할머니가 나를 붙들고 사정하는 것만 같았다. 할머니를 잃은 슬픔과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는 괴로움이 나를 이중으로 기진하게 했다. 하지만 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젊은 시절 혼자가 된 후, 어렵게 자신을 키워 온 어머니의 흔적을 그렇게라도 남겨놓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할머니를 한 줌 가루로 만들어 공중에 훨훨 날려 버리는 건, 아빠에게 너무 잔인하고 허망한 일이었으리라.


  외할머니는 할머니보다 딱 하루 앞서 가셨다. 외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엄마, 아빠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 홀로 할머니 임종을 지켰다. 꼭 그 일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진즉에 할머니와 내가 뭔가 각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었다. 단순한 조손 관계를 뛰어넘는, 어떤 남다른 관계. 할머니가 배 아파 낳은 자식, 아빠도 끼어들 수 없는, 그런 기묘한 애착 관계. 별다른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그랬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즈음 나는 자주 공상에 빠졌다. 나도 할머니처럼 암으로 죽을 지도 몰라. 언젠가 한 번은 아빠에게 물어볼 것이다. 아빠는 할머니 꿈 얼마나 꿨어?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만나는 건 일변 반가운 일이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영 석연찮다. 뭔가 할 말이 남아서라고, 여태껏 편치 않은 거라고, 여전히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아주 오래 전 할머니가 내게 부탁했던 걸, 먼 훗날 내 손으로 해야만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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