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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코드 Jun 28. 2023

우리 비행기의 비상구는 좌우에 각각 있습니다.

내 인생의 엑시트 찾기

얼마 전 출근해서 공항 게이트로 가는 길이었다.

공항 게이트 앞 큰 티브이 화면에는 ‘승객이 비상구를 개방했다.’는 내용의 뉴스가 연신 나오고 있었다.


‘헉.. 설마 비상구를 개방했다고???’

비행근무를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괜 시래 가슴이 더 뛰었던 것 같다.

우리는 비행기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근무하지만 늘 다양한 연령의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을 응대한다.

또 항상 다른 동료들과 선후배 사무장님들과 근무하기 때문에 비행근무 하루하루 새롭지 않은 순간이 없다.

그래서 언제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늘 비상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근무 하루 전부터 끊임없이 리마인드 하고 비행 당일 게이트 앞에서도 늘 되새기며 브리핑하고 항공기에 오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정말이지..

저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나에게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단 말이다…


국내선 근무가 있던 날.

가끔 국내선을 가는 비행기는 AVOD 같은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없는 항공기가 운행하기도 하기 때문에

승무원들이 직접 항공기 비상탈출에 대한 안내를 직접 시연하곤 한다.

이날도 오랜만에 직접 시연해야 하는 날이었다.

왠지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인지? 비상구 손님들께 좌석안내를 할 때부터 비상탈출 안내 시연을 할 때도 왠지 더더욱 비장해지고 책임감이 막강해진 기분이었다.

‘우리 비행기의 비상구는 총 8개로 좌우에 있습니다. 어려 분께서 앉아계신 자리에서 가까운 비상구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상구는 항상 비상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비상구 창문을 통해 외부사항을 확인하고 반드시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개방해야 한다.

특히나 비상구의 자리의 경우 엔진과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외부사항을 더 잘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이착륙 시 비상구 좌석의 창문덮개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

(국제선 항공기의 경우 좀 더 넓은 자리를 받기 위해 금액을 좀 더 내고 앉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본래 비상구의 취지는 항공기 비상상황을 위한 자리이다..)


항공기 비상구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 인생의 엑시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더더욱 ‘조기 은퇴, 퇴사 후 파이어족으로 내 인생의 엑스트’ 같은 말들이 더 많이 등장하게 된 것 같다.

‘엑시트’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설치된 출입구’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인생을 엑시트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조기 은퇴와 퇴사 후 파이어족으로 살아가길 꿈꾸는 걸까?

나도 많은 부자가 되기 위한 책, 자기계발을 위한 책들을 읽어 오고 있지만 아직 명확한 답은 못 찾은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직업도 분명 너무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지만 내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내가 이곳을 엑시트 해서 나의 새로운 길로 나갈 때쯤이면 어떤 것들을 이곳에서 안고 나아갈 수 있는지는 내게 달려 있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평소와 같은 하루하루를 시간만 흘려보낸다면 내가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그냥 흘러가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비행을 통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글로 적기 시작한 것도 그런 무의미한 시간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작은 배움을 얻고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는 사람과

그냥 오늘 하루도 잘 버텨보자. 하며 시작하는 사람과의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날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남들도 하는 평범한 일인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작은 의미와 배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문을 열고 나아 갔을 때 내가 상상한 그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또한 문조차 열지 않았다면 나는 그 안에 평생을 갇혀 있을지 모른다. 그다음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모른 체..


그러고 보면 육아를 할 때도 나는 아이들에게 위험하게 않은 범위에서는 되도록 아이들 스스로 실패를 맛보게 두는 편이다.

(양육검사에서 허용도가 너무 높게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종종 다치기도 한다.. 조심하자..)

아이의 나이에 맞는 시행착오도 겪어야 아이는 그 경험이 쌓이고 그 힘으로 다음 문을 열고 나아갈 힘이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컵에 우유 하나 따르는 일도 사실 다 엎지를까 봐 옆에서 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이도 스스로 자꾸 해 봐야 내가 어느 정도 힘으로 얼마큼 기울여야 우유가 컵에 넘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법이다.

아이의 작은 실수도 쌓이면 좋은 경험이 되듯이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으려면 부모아이에게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해줘야 한다.

(옷은 빨면 그만이고.. 바닥은 닦으면 그만이니까..)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해.

나의 엑시트를 위해 오늘 하루도 감사하고 귀하게 기록하며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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