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식빵 사러 가는 게 귀찮아서 시작한 나의 베이킹은 10개월 동안 진화하고 또 진화했다. 일반 가정에서 오븐과 반죽기를 갖추고 산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던 내게 빵은 사 먹는 것인지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의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빵을 사러가는 수고로움이 빵을 만드는 부지런함보다 더 컸던 나는 결국 에어프라이어와 손반죽에 의존해 초라하지만 촉촉한 식빵을 구워내고 나아가 작은 오븐을 구입하고 구움 과자와 케이크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식빵에서 시작한 베이킹은 40대의 나이에 또 다른 직업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몰두하고 열정적일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좀체 발견하지 못했던 숨은 적성을 찾은 느낌이랄까. 어쩜 모든 홈베이커들이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나는 지난 4월 내일 배움 카드 국비지원을 받아 제과제빵 학원을 등록하고 지난주에는 실기시험을 치고 왔다. 필기시험을 준비할 때도 이론이 재미있어 '떨어지면 또 공부하면 되니 또 재미있겠네!'라는 다소 변태적인 생각을 하고, 실기 역시 떨어지면 또 준비하고 또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적어도 정신승리는 확실히 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제빵이 재미있어 나는 제빵사의 길을 걸어가기로 목표를 세웠다.
오전에는 학원에서 실기를 배우고 오후에는 아이 학원 픽업을 왔다 갔다 하며 빵 만들 재료를 개량하고 반죽을 치고 발효를 하고, 아이의 학원 일과가 끝나면 그때서야 반죽 성형을 하고 2차 발효를 하고 빵을 굽는다.
힘들지만 이 힘듦이 내 삶의 큰 원동력이 된다. 유난히 손을 많이 쓴 날은 손목이 욱신거리지만 파스 한 장 붙이고, 나는 괜찮다, 내일의 직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태하고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아오노 슌주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을 보면 40대에 만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주인공 시즈오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최선을 다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 그가 말한 '최선'을 다 해도 그는 만화가 데뷔에 번번이 실패한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나도 그렇다.
결과가 어떻든 경력단절 40대의 직업전선으로써 제빵이라는 영역이 녹록지 않겠지만, 나는 최선을 다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