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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이날 Jul 30. 2021

'그냥' 걸었어!

 늦은 밤, 자려고 누웠더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깜짝 놀라 잠이 달아났다가 다시 꾸벅 졸기 시작할 즘 심장이 쿵, 아니 '꿀렁' 하고 한 바퀴 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증상이 부정맥의 한 증상이란 걸 알고 있었다.


 40대의 나에게 올 것이 온건가. 나는 내가 돌연사하는 상상을 하며, 상비약처럼 얼른 유서라도 써서 책상 어디쯤 붙여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머릿속으로 유서를 쓰면서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밤을 새었다. 그리고 유서는 남기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이 날 즈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저학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면서, 내 새끼를 속으로 울부짖으면서  나는 뭐든 그냥 해보자하는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 신경쓰지 말고 그냥 아무거나.


그냥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을 걷고 다음 날 또 걸었다.

 아이를 학교에 바라다주는 길로 보도를 걸으면서, 나는 팔을 돌리고 목을 돌리고 허리도 좀 돌려보고 부끄럼 따위는 없었다. 돌연사를 생각하는 마당에 그깟 부끄러움 쯤이야.


그렇게 '그냥 ' 걸은 지 4개월이 됐다. 1개월 째에 무릎에 통증이 심하게 왔지만 보호대를 차고서라도 천천히 걸었다. 그리고 3개월 째에는 보호대 없이 무리하지 않고 걷는 법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변화는 나는 돌연사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든 것.

더 놀라운 건 체중 변화가 눈꼽만치도 없다는 것,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심장이 쿵 떨어지지 않는 것과 더불어 기존에 입던 옷이 사뭇 헐렁하게 느껴진다는 점.


나는 더 이상 머릿속으로 유서를 쓰지 않게 됐다.

대신 걸으면서 듣게 된 어느 유튜버의 추천으로 공자의 <논어> 해설집을 샀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살아보려했던 소로우의 <월든>을 샀고, 또 만화책을 샀다.

내 건강의 증진과 함께 굳이 포장하자면 합리적인 소비의 욕구가 늘었달까.


 나는 내일은 걸으면서 '어떤 음악을 들어볼까, 어떤 유튜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를 생각하면서 걷는 걸 좀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더운 날씨에 땀 범벅이 되면서도 가끔 부는 뜨거운 바람에 나의 건강염려증을 훌훌 날려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상쾌하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나를 밖으로 밀고, 걸으면서 꽁꽁 싸맨 내가 잊고 산 '자아'가 조금 숨통이 트였다.

'그냥' 걸었듯 난 '그냥'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또 땡볕을 피해서 어디를 걸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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