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이날 Sep 10. 2021

빤스 사는 거 말리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그냥...... 그냥 안 사요.

 결혼 전에는 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고 다녔다.

매주 인조 속눈썹을 붙이러 샵을 가고 손톱관리를 하고 1일 1팩은 물론 몸매 관리를 위해 하루 1시간 걷기, 물 2리터 마시기 등 외모를 관리하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많이 쏟았다. 그때는 속옷조차 위아래 세트로 사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줄 알 때였다.


결혼을 하고 외모를 꾸미던 에너지는 온전히 아이에게 쏟아졌다. 옷과 속눈썹과 손톱에 썼던 돈은 고스란히 아이의 옷을 사고 간식을 사고 살림살이를 쓰는 데 소요되었다.


어느덧 더 이상 나는 옷을 사지 않고 두 세벌의 옷으로 교복처럼 돌려 입으며, 세트로 사지 않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던 속옷도 색깔 상관없이 늘어질대로 늘어져도 구멍만 나지 않으면 그냥저냥 입게 되었다.


코로나 백신을 예약하고 나는 제일 먼저 속옷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시인이 생각났다. 그는 사고로 죽게 되면 가장 걱정되는 게 빤스라고 했다.  늘어나고 초라한 팬티를 누군가가 본다면 죽어서도 부끄러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 시인의 말을 온전히 이해했다.

혹여나 몇 만분의 1로 일어난다는 백신의 부작용이 일어나 정신을 잃는다거나 창졸지간에 이 세상과 안녕한다면, 나는 늘어난 뱃살과 펑퍼짐한 엉덩이 살보다도 색이 바래고 늘어진 나의 속옷이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 것 같았다. 물론 죽으면 들 고개조차 없겠지만.


백신을 맞았다.

하지만 나는 새 속옷을 사서 입고 가진 않았다. 대신 속옷 중에 가장 늘어나지 않은 멀쩡해보이는 걸 입고 갔다.

다행히 몇 만분의 1로 일어난다는 백신 부작용은 나를 비껴나 은밀하게 부끄러운 내 속옷의 치부는 감춰졌다.

나는 속옷을 살 돈으로 가족들과 삼겹살을 사먹었다.


혼자 있을 때 곰곰히 생각하면 한편으론 슬픈 감정이 치든다.

'아니, 그깟 속옷이 뭐라고 사래도 못사냐, 요즘 속옷은 질이 좋아서 늘어질대로 늘어만지지 좀체 구멍이 나지 않는단 말이다!'

사 입어라해도 나는 아까워 못 사 입는 속옷.

우리 엄마의 구멍 난 면 팬티처럼 나도 엄마의 딸이 맞는가보네.


빤스때문이라도 나는 사고가 나지 않게 전방좌우 주의직시하며 잘 걸어다녀야한다. 죽어서도 부끄러운건 돌아갈 길이 없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내가 빵을 만들게 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