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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덩이와 복돌이

가족은 나의 힘

by 연글연글




'복'이란 어떤 모양일까

나는 왠지, 복은 동그랗다고 생각해 왔다.
이유나 근거도 없이. 그냥.


우리 집에서 '복덩이'라 불리던 작은딸을 보면
그 생각이 더 굳어진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
웃음마저 동글동글하던 아이.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복이란 참 동그랗고 따뜻한 거구나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딱히 이유도 없이
작은딸을 부를 때마다 ‘복덩이’라고 불렀다.

​어릴 때는 먹성이 언니보다 좋아서, 언니는 반찬을 골라내기 바빴지만 작은딸은 늘 맛있게 잘 먹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서도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옆으로 와 짤뚱한 키로 나를 올려다보며
"엄마, 오늘 디저트 과일은 뭐예요?" 하고 묻곤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나는 고무장갑을 낀 채로
옆구리에 붙은 동그란 아이를 내려다보며 참 많이 웃곤 했다.

​또래 친구들뿐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도 금세 어울리던 큰딸과는 달리, 작은딸은 늘 엄마 옆에 찰싹 붙어 다니는 걸 좋아했다.


내가 슈퍼에 갈 때마다, 자기 인형 유모차에 곰돌이를 태우고 따라나서곤 했다.


동네에서 마주치는 이웃 아주머니, 빵집 언니, 슈퍼마켓 사장님, 과일가게 아저씨까지 모두들 그 복덩이 작은딸을 보며 웃음을 지어주곤 했다.




​그런 작은딸이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였다.

그때 내 남동생이 다니던 직장에서 '알라딘 폰'이라는 신제품이 나왔다.


아이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긴급 알림 기능이 있는 폰으로 학부모를 겨냥해 나온 학생용 핸드폰이었다.


직원들에게 일정 판매량이 할당됐는지,
동생의 부탁으로 작은딸 핸드폰을 처음 사주게 되었다.


큰딸은 고등학교에 입학해서야 갖게 된 폰을, 작은딸은 특별한 상황으로 중학생 때 갖게 된 것이다.

​폰이 배송되던 날이었다.

인터폰 벨소리가 울리자마자 작은딸은 총알처럼 현관으로 튀어나갔다.
택배 상자를 받아 들고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 나 진짜 복덩이 맞나 봐요! 이렇게 핸드폰도 일찍 사주시고!"

​그 말에 나는 그만 웃음이 터졌고,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이야기를 전하며 우리 부부는 또 한 번 크게 웃었다.


자신이 복덩이라 굳게 믿으며 작은딸은 그렇게 무럭무럭 자랐다.




​큰딸이 대기업에 취직한 지 일 년쯤 되던 해에, 출퇴근 버스에 지쳐 직장 옆으로 독립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떠나보낼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때가 닥치자 생각보다 훨씬 깊은 허전함이 몰려왔다.


남편과 나의 슬픔으로 집안이 마치 초상집처럼 무거워졌다.

​그때, 슬퍼하는 우리 부부 옆에 꼭 붙어 앉아서

“나는 나중에 취직해도 출퇴근 버스만 있으면
아무리 멀어도 엄마 아빠 곁을 안 떠날 거야” 하고
위로해 주던 작은딸.


그러던 그 딸은, 지금은 출근 버스가 아니라 비행기를 타고 더 멀리 호주에서 살고 있다.

​멀리 있어도, 그 아이는 여전히 우리 부부의 ‘복덩이’다.


때때로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그 동글동글하던 얼굴이 떠오르고,
자잘한 이야기에도 "엄마, 잘했어요!" 하고
맞장구쳐주는 말투에 문득 웃음이 난다.

​우리 집엔, 지금도 동그란 복이 하나 더 살고 있다.
바로, 엄마보단 이모를 더 닮은 동그란 손녀.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믿는다.
우리 집엔 여전히, 복덩이가 살고 있다고.

​복은 꼭 손에 쥐고 있어야만 느껴지는 게 아니구나.
마음속에 동그랗게 남아 오래도록 따뜻함을 전해주는 것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복은 동그랗고... 부드럽다.

​이번에 우리 가족이 된, 동그란 얼굴의 둘째 사위를
"복돌이"라고 부르는 88 여사님을 보니,
여사님도 복은 동그랗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문득, 다른 집에는 또 어떤 모양의 복들이 들어앉아 있을지… 괜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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