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할 뿐
늦은 나이에 대학교에 왔다. 굳이 퇴사를 하고 대학교를 온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사실 원하는 직무에서 특히나 4년 대졸 학사 이상의 학위가 자격 요건인 회사들이 많아서 나름 몇 년간의 고민 끝에 모험을 택했다. 역시나! 오기 전에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지라 나름 어떻게 위기상황에 대처할 것인지 몇십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맞닥 뜨린 현실은 예상했던 경우의 수를 훨씬 상회했다. 4년에 가까운 사회생활 동안 쌓인 연륜으로는 분명 커버하지 못하는 거대한 벽들이 더러 존재했다. 더러 수준이 아니다. 마치 더 힘든 회사로 이직을 했을 때(*아직 해본적은 없지만)의 황망함이 이런 건지를 느끼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한풀이는 각설하고.
PD 채용기조가 몇 년 사이에 묘하게 바뀌었다. 일단 메이저 방송사를 정규직으로 입사하려면 모두가 익히 알고 있듯이 언론고시를 준비해야 한다. 학벌은 당연한 베이스가 되는 스펙이고 언론고시 난이도를 뚫기도 만만치 않다. 공무원 시험이나 ncs처럼 답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는 객관식 시험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내 생각을 적는 것이라 정답이 따로 없는 시험이라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것도 시험인지라 엄연히 글을 쓰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런 고착화된 글을 쓰는 방법론에 대한 강좌를 듣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니냐 싶지만 주로 언론고시에서 요구되는 논증적인 글을 쓰는 것은 대학교 와서 처음 해보는 쪼렙이다. 다행히 학과에서 언론 문장을 쓸일이 많기에 글쓰는 기틀을 뜯어고치고 있다. 하지만 필기시험 뿐 아니라 준비해야 할 실무적인 스펙이 요구되는 건 당연지사다. 대외활동이라든지 포트폴리오는 필수다.
언론고시가 쉽지 않게 느껴진다면 한 가지 길이 더 있다. 소규모든 대규모든 어떤 제작사에라도 들어가 경력을 쌓으면서 촬영 편집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지원을 희망하는 분들이 밤하늘의 별만큼 많기에 쉽지는 않다. 이러나저러나 노력해야 하는 길이거늘. 공고는 다양하다. 사내 유튜브 전담부서에서 유튜브 썸네일과 롱폼과 숏폼을 편집하는 전담 직책을 구하기도 하고(*물론 계약직이 많다) 지역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회사 홍보차원의 영상 작업을 하는 직책, 취재영상을 만드는 직책, 숏폼만 만드는 직책 등 정규직과 계약직을 가리지 않고 공고가 잦게 뜬다. 공고마다 영상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요즘은 포토샵 포트폴리오도 같이 요구하는 공고도 적지 않다. 와 당장 프리미어도 쪼렙인데 포토샵까지 공부해야 한다니 즐거울 따름이다! (*일단 영상 포폴부터..)
PD직군을 준비 함에 있어서 내가 쌩 초짜인 분야는 하나 더 있다. 그것도 가장 핵심적이 분야인데 바로 영상 편집이다. 일전에 마케팅회사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당시의 나는 어도비의 수많은 툴 중 단 한 가지의 역량도 없었던 상태로 다소 무모하게 자그마치 마케팅 직무에 이력서를 넣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다) 어느 정도의 경험치를 쌓을 필요가 있다는 면접관으로 오신 사장님의 피드백을 듣고 각성을 하나 싶었지만 결국 툴을 배우는 것에 실패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취재나 소재로 쓸 아이템을 찾아야 영상을 만들든지 하는데 아이템을 찾을 여력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유튜브 운영을 하는 분들도 정말 많으니, 물리적인 여건이 안된다는 말도 핑계임을 안다. 그리고 무조건 유료강의를 들어야만 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는 생각도 착오였다.
여차저차 지원서를 쓰고 운이 좋게도 학내 언론사에 입단하게 되었다. 막상 와서 부딪혀보니 언론사 선배들에게 편집기술을 배우는 시간보다는 압도적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프리미어를 독학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당연하다. 프리미어에 내장된 툴들이 수십 개인데 이것을 단편적인 몇 시간에 걸친 대면 코칭으로 섭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새로운 영상을 만들 때마다 유튜브 바닷속의 숱한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는 방법만이 돌파구다. '편집하는 여자' 채널에게 감사를 표한다. 채널주님이 제공해 주신 템플릿들이 아니었다면 작년에 만든 영상들이 세상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여튼간 같이 활동하는 동기들이 툴을 습득하는 센스가 어마무시해서 자극도 받고 도움을 얻을 방안이 있으면 더 눈에 불을 켜고 찾게 됐다. 역시 이런 툴은 백 마디 말보다 실제 한 번 실행해 보는 것만 못하다.
그래도 아직까지 프리미어라는 바다는 너무나 넓고 방대하다. 졸업하기 전까지 조금 습득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주변에 잘하는 친구들은 많으니 얼마나 내가 열심히 실습해 보느냐에 달렸다! 여튼간 언론고시 필기준비에 실무적인 습득에 바람 잘 날 없지만 눈썹 휘날리게 바쁘니 인생이 훨씬 재밌어진 기분이다. (*'재밌다고 느껴야지' 하는 자기 세뇌일 수도) 사실 전 직장을 다닐 때는 업무 관련해서 만큼은 능력신장을 하는 식으로 자아를 실현할 일은 거의 없었다. 사람 대하는 스킬만 적립하는 기분이었는데 이건 어떤 직장에서든 늘 수밖에 없는 스킬이니. 내가 배우는 공부가 앞으로 다닐 직장에서의 업무 적응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나기도 하고 그렇다.
끝까지 가봐야 알겠지만!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정보를 찾아다니다 보니 천재일우의 기회도 생겼다.
이건 다음 편에 이어서 적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