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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질그릇 Sep 22. 2024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자가 주는 상처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논조의 문구, 문장, 선언, 조언 등을 많이 봐 왔다. 좋은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많이 속이면서 살아 간다. 자신에게 속고, 또 자신을 속인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또는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지,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등등 우리는 너무 많은 주제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서툴게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그래서 우리는 매사에 스스로 솔직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자의 자세다.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적절한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그것이 외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에는 시기와 방법도 중요한 법이다. 모든 것에는 적절한 타이밍과 소통의 방식이 있다. 나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게 무언가를 하지만, 타이밍과 방식에 문제가 있을 경우,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된다.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 이다. 


인간의 가르침에 완벽한 것은 없다. 인간이 가르치는 하나의 문장이 모든 것을 품을 수는 없다. 그렇듯 자신을 수도 없이 속이는 지금의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라' 는 조언이 정말 합리적이고, 적절한 가르침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상호작용 속에 있다면, 나의 감정은 틀림없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도 얽혀 있을 것이다. 눈치를 보라는 뜻은 아니다. 감정에 '적절히 솔직하되, 왜곡하라' 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그것이 외부로 표출될 때에는 자신의 감정만큼 다른 이의 감정도 조금은 신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해서는 안 된다.


*충실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좀 더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면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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