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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Nov 11. 2020

끔찍한 두통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2학년 3반, 체육고등학교인가 싶을 정도로 피구왕들로 가득찬 반이었다. 승부욕으로 불타오르는 18살 여고생들의 체육대회는 흔히 신경전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연습공간을 어느 반이 먼저 차지했냐느니 그런 소소한 다툼을 겪으면서 체육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 청소시간들을 피구 연습시간으로 썼던 결과 12반 중 결승전에 진출했다. 체육대회는 잠실체육관을 빌려서 했고 그 안에서 우리들은 마치 진짜 운동선수들이라도 된 양 눈빛을 이글거리며 경기를 했다. 2학년 3반 피구 왕들은 대망의 우승을 차지했다. 마치 월드컵 1위라도 한 듯한 반 분위기 속에 모여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는 자리였다.      


  도시락 뚜껑을 여는 순간 시작된 눈앞이 캄캄해지는 두통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릴 여력도 없이 큰 잠실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며 건국대학교병원응급실로 택시를 타고 갔다. 곧이어 엄마도 응급실에 도착했다. 갑작스런 두통에 머리 CT촬영 등 각종 검사도 진행되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찾을 수 없었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니 두통은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말끔해졌다. 체육대회가 끝났다는 친구들에게 가방을 받기 위해 만나서는 아무 문제 없이 다시 하하호호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해프닝인 줄만 알았던 두통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다음날 많게는 하루에 세 번까지도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왔다.      


  학창시절 동안 조퇴라곤 안 해본 나는 몇 주간 1교시가 시작되기 전 조퇴를 했다. 한 번은 과호흡까지 와 학교에서 119구급차량을 타고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심전도 검사, 혈액검사 등이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검사 결과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고 진통제 처치 후 곧 안정되었다. 몇 주간 학원도 나갈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아파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검사결과 이상이 없다니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정형외과, 한의원, 내과, 통증의학과 등 갈 수 있는 진료과들을 모두 찾아다녔다. 마지막으로 들른 신경과에서 ‘긴장성 두통’이라는 진단명을 내려주었고 근이완제와 진통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천천히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긴장성 두통은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목 · 뒤통수의 근육긴장으로 발생한다(이전에는 근육수축형 두통이라고 하였다). 1차성 두통 중에서 가장 많아, 두통 환자의 약 절반을 차지한다. 긴장형 두통에는 두통발작이 몇 분에서 1주일간 지속되는 반복성 긴장형 두통과, 두통발작이 며칠에서 수개월에 걸쳐 나타나는 만성 긴장형 두통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반복성 긴장형 두통은 만성 긴장형 두통으로 이행하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원인으로 머리를 지탱하는 뒷목부분의 근육긴장(결림)이 발생하여 두통으로 이어진다. 원인으로는 정신적 · 신체적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 운동부족, 엎드린 자세, 눈 피로, 약한 목, 둥그스름한 어깨, 턱관절 이상 등을 들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해당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나쁜자세대회가 있다면 1등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가 정말 안 좋았다. 그래서 엄마는 나의 두통 타임에도 어김없이 한 소리를 빼놓지 않는다. “니가 자세 고치라는 말 안들어서 그러잖아!” (그래서 이제는 아빠랑 병원에 간다.)      


  어쨌든 두통은 아침보다 저녁에 강하고 양측성으로 조이는 듯 한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한다. 뒤통수 머리뼈 주위에서 많이 나타나며, 비박동성이고 양측성이다. 통증의 강도는 경도에서 중등도이고 일상동작으로 악화되지는 않는다. 빛이나 소리에 과민반응을 보이거나 구역질 및 구토를 동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의 경우는 정도가 심각해 구토까지 이어졌고 빛, 소리에 아주 예민해져서 불 꺼진 방에서 아무도 소리도 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또 맑은 날에는 증상이 가볍지만 저기압인 날씨에는 심해지는 날씨 의존성도 나타난다. 또 편두통이나 외상성 두통에 동반되는 경우도 있다. 촉진을 하면 머리뼈 주위에 압통이 증가하는 경우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나의 학생생활기록부에 ‘건강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해주어 고맙다.’라고 적어주셨을 정도였고 후에 피구왕 친구들은 내가 다시 건강해져 학교로 돌아갔을 때 서랍 안에다가 빨리 나아 예전의 나로 돌아와 달라는 롤링페이퍼도 남겨주었다.      


  ‘그래, 그때 한참 아팠지’라고 추억할 때쯤이면 어김 없이 두통은 다시 찾아왔다. 과거의 기억은 미화돼서 나타나기 마련인데 좋게 생각할래야 좋아질 수 없었다. 1년이 지났던 고3, 또 일 년이 지났던 20살, 또 몇 년이 지나 국가고시 공부를 할 때, 병원 입사 후 신규생활을 할 때, 글을 쓰면서 계속 만났다. 올해로 9년째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웬만하면 아프다 소리를 하지 않는 나는 이렇게 견딜 수 없는 통증에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왜 나만 이렇게 아픈 거야. 이렇게 아플거면 머리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며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그래,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두통과 싸움을 했다. 물론 K.O 당해 지쳐 잠들어버리기가 일쑤였지만.     


  정신적 요인이 커서, 우울증 증례의 65%에서 이 형태의 두통이 나타나며, 또 이 형태의 두통 환자 60% 이상에서 우울증이 나타난다는 보고도 있다. 두통을 일으키는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제거하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중증의 경우는 약물요법이 필요하다. 약물요법에서는 진통제(NSAIDs 등), 예방제(항우울제)를 투여하며, 그 외에 스트레칭, 두통체조, 인지행동요법 등을 실시한다. 승부욕 강한 나는 두통과의 싸움에서 계속해서 지니 심신이 많이 지쳐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으며 흐르지 않는 눈물로 매일을 보냈다.      


  세상에 우쭐대던 내가 세상이 결코 만만하지 않음을 처음 알게 된 계기였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집 밖으로 나갔다. 한강 자전거 도로 산책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학교생활 중 체육시간을 가장 좋아했지만 그 중 싫었던 하나를 꼽자면 ‘오래달리기’였다. 그렇지만 달리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뛰고 숨을 몰아쉬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 다음날도 뛰고, 다음 다음날도 또 뛰었다. 한번은 동네의 친한 친구를 불러내어 함께 운동을 하자며 불러냈다. 가까이에 있지만 각자가 바빠서 자주 이야기는 못했던 지라, 잠시 쉬는 동안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 

“나는 사실 뭐 별거 없어 요즘 아픈 건 없어졌는데 그냥 죽고싶었어.” 라는 말에 친구는 내 얼굴을 보며 “그렇게 아픈 줄 몰랐어. 왜 말 안했어.”라며 울기 시작했다.      


  참 고마웠다. 내 표현 할 줄 모르는 나에게 ‘왜 말 안했냐.는 말은 혼란스럽지만 새로운 위로였다. 뭘 말해야하지? 어떻게 말해야하지? 누구나 아플 수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아직도 표현에 서툴러 이렇게 글로 표현하고 있는 나다. 나를 봐달라고 알아달라고 외치고 외쳐도 겨우 전달되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이 작은 소리를 들어주고 있으리라 믿고 한 글자씩 더 적고, 한 마디씩 더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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