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시곗바늘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시계의 초침소리는 왜 아직도 안자냐고 나를 꾸짖기라도 하는 듯 평소보다도 더 큰 소리로 내 귓가를 따갑게 때린다. 과거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미래가 된다. 가지 말라고 애를 태워도 시간은 못들은 척 제 갈 길을 가버린다. 그게 얄미워서 방에 있던 어릴적부터 쓰던 오래된 시계를 떼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내 방에는 시계가 없다. 시간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나를 억누르던 것 중 하나를 내 방식대로 떨쳐냈다.
사람은 잠을 잔다. 동물도 잠을 잔다. 식물도 잘은 모르겠지만 저녁이면 꽃봉오리가 살짝 지는 것을 보아 잠을 잔다. 어쨌든 모두들 잠을 잔다. 잠을 자면 다음날 일어난다. 당연한 일이다. 자면 언젠가는 일어나게 되는 그 지겹도록 당연한 일이 싫었다. 그래서 최대한 잠을 참았다. 이틀에 하루 자는 날들도 빈번했다. 하루에 한 시간, 두시간씩 자고서는 안피곤한 척 좀비처럼 걸어다니며 생활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는 인간의 세 가지 본능 식욕, 성욕, 수면욕 중 하나인 수면을 거부했었다. 잠으로부터 도망간 이유는 내일 눈을 뜨면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나를 반기고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거부하는 동안 창밖은 서서히 밝아진다. 아침이 찾아왔다. 그 때가 되면 암막커튼으로 온 빛을 가렸다. 계속 밤이고 싶었다.
나의 하루는 그렇다. 할아버지는 전·측두엽 치매 환자이다. 전·측두엽 치매의 가장 선행하는 증상으로는 인격의 변화 및 언어 기능의 저하가 있으며, 기억 능력은 비교적 정상을 유지한다. 이 질환은 종종 파킨슨증이나 근위축측삭경화중의 운동신경성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현재까지는 알려진 이렇다 할 치료 방법은 없다고 한다. 약 복용 시간이 지났거나 피로가 쌓이면 더더욱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신경예민을 말과 행동으로 있는 그대로 표출한다. 그를 진정시키는 것의 1순위는 손녀딸의 애교섞인 스킨십과 말장난이다. 태생부터 무뚝뚝한 손녀딸은 그를 위해 아침부터 개다리춤을 춰보인다. 할머니는 밥을 먹고 집안에서 무려 30분 동안이나 걷기 운동을 한다. 그리 넓지 않은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운동을 하다 파킨슨병 약을 먹고서는 TV의 아침 프로그램들을 쭉 넘기다가 이내 소파에서 잠이 든다. 그런 할머니의 안경을 인기척 내지 않고 조용히 벗겨 머리맡에 놓는다.
아빠는 고모부의 유리공장에서 일을 한다. 요새 일이 많은가보다. 매일 같이 야근을 끝내고 오면 온몸이 쑤신다고 한다. 56세의 나이에 힘을 써야 하는 일이니 아프지 않은 게 정상이 아니겠지. 아무리 늦게 퇴근하더라도 꼭 TV앞에 앉아 엄마한테서 잔소리를 듣는다. 그 옆에 앉아 괜히 아빠 어깨를 두드린다. 그리고는 아빠 이름으로 일요일 오전시간 집 앞 태국마사지 1시간 3만원 할인가를 예약한다. 엄마는 바쁘다. 아침에 1등 혹은 2등으로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곤 서둘러 오빠가 데이케어센터에 가는 것을 준비하고 본인은 화장도 못한 채 “다녀올게요!” 씩씩하게 말하고 집을 나선다. 밤에 내가 밖에 있으면 메시지가 온다. “올 때 맥주 사와. 스텔라.” 혹은 “000에서 혼술중. 오든가.” 바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 한 번도 앞에 앉아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나도 그래서 혼술이라는 것을 배웠다.
오빠는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절대 고의는 아니지만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깨운다. 어릴 적부터 내 방에 뭔가가 사라지면 “오빠!!!”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다 들리게 소리쳤던 지라 방에는 잘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서 나를 살며시 살펴본다. 그리고선 모두가 집을 나선 후 할머니, 할아버지와 집 앞에서 데이케어센터 차량을 기다린다. 그리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선물을 기다린다. 그러면 저녁 무렵 집에 들어갈 때 종이박스로 포장된 작은 과자들을 하나 들고 들어간다. 오빠에게 줄 선물이다. 손에 쥐어주면 더 이상 행복해 할 수도 없다. 이천원 정도면 모든 걸 가졌다는 듯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내가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는 먹지도 않고 가지고 놀다가 버려지는 과자들이 아까워 엄마, 아빠에게도 사오지 말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밖에서 친구를 만나 브런치를 먹는 사치를 하기도 하고, 하루에 카페를 두 번씩 가는 날도 있고, 영화도 보고 술도 마시러 다닌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다. 이천 원이 뭐라고 소중한 오빠한테 그거 하나 못해주나.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간단하게 보일, 한숨 쉬며 본다면 땅이 꺼질 만큼 버거운 매일이다. 어깨에 그랜드캐니언을 짊어진 것처럼 무겁지만 두렵지는 않다. 내가 지구가 되면 그 무게쯤 끌어당기는 것은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강해지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을 했다. “원망스럽지는 않아?” 나는 대답했다. “뭐가?” 거짓 없는 답변이었다.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아무것도 탓하지 않는다. 원망할 거리도 탓할 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나 밤이 긴 날, 새벽이라는 무서운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보며 멈춰지지 않는 가속 붙은 생각이 도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그냥 시간을 탓한다. “시간 지나면 해결돼, 괜찮아져.” 라는 무책임한 말에 기대 시간이 가기만을 바랐던 날들이 많다. 해결되지 않는, 해결될 수 없는 일들을 내 머릿속에 가지고 있어봤자 내리는 결론은 “아물라.” 뿐이다. 모르겠다. 최소한 지금처럼이라도 살기위해서는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것 앞에서 “너 때문이야!” 하는 어리광이라도 부려야겠다.
허지웅 작가의 ‘버티는 삶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신조어로 ‘존버(존X 버티다라는 뜻)’라는 단어도 생겨났다. 요즘은 그냥 사는 것도 아니고 모두들 겨우 겨우 버티며 살고 있나보다. 얼마 전 고민이 있다는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놀라울 정도로 나의 속마음을 읽듯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내뱉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기 싫어.”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말을 이해해주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위로가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공허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더 그렇다. 나와 비슷한 존재가 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 그도, 나도 버티고 있었다. 아마 당신도 버티고 있을 것이다. 버티면 살아진다는 확률 게임에 배팅중이다. 잭팟이 터지는 그날까지 나의 배팅은 계속될 것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이라는데 이 정도 흔들림과 도망은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시간이 흘러간다는 공평하고도 절대적인 것을 탓하기로 했으니 당신도 무엇 하나 미워할 것을 찾아보았으면 좋겠다. 대신, 마음에 가책이 가지 않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 그래야 나 자신은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멋지게 미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