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좀 빼세요.” 네일숍, 마사지샵, 한의원, 필라테스 선생님, 도수치료를 맡아주던 운동치료사 선생님까지도 나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였다. 꼭 여러 번씩 이야기를 듣는다. 힘을 어떻게 빼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동치료사 선생님은 나에게 마음 수련 좀 하고 오라는 농담을 하시기도 했다. 나에게는 힘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힘 빼기였다.
몇 년 전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궜던 대회가 있다. 바로 멍 때리기 대회다. 멍 때리기 대회는 2014년 예술가 웁쓰양에 의해 개최되기 시작한 대회다. 여기서 멍 때리기는 아무런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뜻하며, 대회의 규칙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심박측정기를 지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야 한다. 대회가 진행되는 3시간 동안 참가자들은 휴대전화 확인, 졸거나 잠자기, 시간 확인, 잡담 나누기, 주최 측 음료 외의 음식물 섭취(껌 씹기 제외) , 노래 부르기 또는 춤추기, 독서, 웃음 등이 금지된다.
다만 철저히 묵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세 가지 색상의 ‘히든카드’를 사용해 불편사항을 해결할 수 있다. 근육이 뭉쳐 안마서비스가 필요할 경우에는 ‘빨간색’ 카드, 부채질이 필요하다면 ‘노란색’ 카드, 갈증 해소를 위한 음료가 필요하다면 ‘파란색’ 카드, 기타 불편사항이 있을 때는 ‘검은색 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한편,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진행요원들은 15분마다 참가자 검지에 기구를 갖다 대 심박수를 체크한다. 그리고 경기를 관전하는 주변 시민들은 인상적인 참가자들에게 스티커 투표를 해, 관객 투표 다득점자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심박 그래프를 보인 이들이 1~3등이 된다. 대회 우승자에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형상의 트로피와 상장이 수여된다.
제1회 대회에서 9살 어린이가 우승을 했고 그 이후 가수 크러쉬도 1등 상을 수상해 매년 한 번씩 화제가 되었던 대회이다. ‘뭐 저런 대회를 해?’ 정도의 우스꽝스러운 시선에서 좀 의미 있게 접근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무언가에 열중할 때 뇌가 활동하며 단련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반전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만 일을 하는 뇌의 부위가 있다. 이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한다. 이 회로를 잘 움직이게 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인간의 뇌는 쉬고 있을 때 마음껏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고 기억 사이들을 연결하여 정리한다고 한다. 갑자기 어려운 단어에 당황스러운 당신을 위해 예를 들자면, 멍하니 버스 창밖을 바라보거나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다가 갑자기 “아, 맞다!” 하며 무언가 떠오르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순간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 순간이다. 당신의 긴장이 풀려 있을 때 이 네트워크가 작동해 기억과 기억들을 연결해서 정리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잠자는 시간을 빼면 매 순간 생각의 연속이다. 만약 자각몽(lucid dream,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는 거을 자각 하면서 꾸는 꿈)을 꿨다면 안타깝게도 잠을 자면서도 생각을 했겠지만 말이다. 하루 7시간에서 8시간을 잔다고 하고, 평균 연령을 100세라고 치면 일평생 잠자는 시간은 약 30년 정도이다. 그렇다면 대략 70년가량 생각을 하고 뇌를 가동하는데 쓰게 된다. 70년 동안 뇌에 힘을 가득 주고 살아가야 하다니, 너무나도 억울하다. 이 기나긴 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 뇌는 정리할 시간 없이 평생을 일만 하다가 죽는다. 수고하는 뇌에게도 휴식시간 좀 주자.
기억은 미화된다.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이었다. 자살률 높은 마포대교가 감동적인 글귀들로 재탄생되었다고 해 구경을 갔다. 처음 본 나는 그때 뭐가 힘들었는지 여러 문구들을 보자마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포대교 사진을 찾는다면 흔히 볼 수 있는 글귀이다. “3년 전 가장 힘들었던 게 뭐야?” 거짓말처럼 단번에 떠오르지 않는다. ‘3년 전? 나 진짜 힘들었거든? 한 번도 안 힘든 적 없었거든?’이라는 오기로 기억해보려 했지만 단번에 생각나지는 않았다.
택시를 타고 출근을 할 때 병원 입구의 차량 차단기가 보이는 순간부터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바쁜 하루가 끝나면 번 아웃되어 나도 모르게 지하철 몇 정거장씩 걷고 있었다. 나와 주변 친구들의 말을 보편화하자면 간호사들은 ‘출근하기 싫어’를 극단적으로 표현하곤 한다. 출근하면서 탄 택시가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태풍에 병원이 날아가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버스를 기다리는 큰길에서 뛰어들고 싶다, 등등 격하지만 전혀 가감 없는 현실적인 표현이다. 그만큼이나 힘들었으면서 그간의 기억들 중 많은 지분은 꽤나 긍정적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기억은 알아서 예뻐진 것이다.
6.25 한국전쟁 시절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미군 부대에서 주방일을 돕고, 카투사로 군 복무를 했던 곧 90의 나이테를 얻게될 할아버지는 지금도 영어공부에 열정적이다. 집에서는 TV로 BBC 등 영어 뉴스 채널을 온종일 즐겨보며 출처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가져온 영어 원서를 하루 종일 반복해서 쓴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또, 할아버지 휴대폰에는 영어사전, 영어 번역기 애플리케이션도 있다. 그만큼 영어를 사랑하는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내가 집을 나설 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면 항상 “take it easy!”라고 크게 답해준다. 단언컨대 여태껏 집을 나서면서 한 번도 빠짐없었다.
Take it easy. 영어사전을 보면 여러 가지 예문과 뜻이 나오지만 뭐 결국은 마음 편하게 가지고 쉬엄쉬엄하라는 뜻이다. 단순하게 살아가기 참 어려운 세상이다. 나 홀로 여유롭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공기들 속에 투명한 선인장이 숨어있는 것만 같아 요리조리 피하느라 긴장하는 삶이다. 어디서 가시가 나타나 나를, 우리를 툭 건드릴지 몰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나아간다. 그 날카로운 공기 속에서 그래도 숨 한 번 크게 쉴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의 “take it easy” 가 귀에 맴돌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힘을 조금 풀고 마음을 편하게 가졌으면 한다. 하루 한 번 혼자만의 멍 때리기 대회를 열고 나를 쉬게 하는 머릿속 휴가를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