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홍콩 여행
SNS에 가득 찬 여행사진을 보고 누군가는 나에게 베짱이의 삶이 부럽다고 한다. 나의 여행의 목적은 항상 같았다. ‘도피’ 잠을 잘 때 꿈에서마저 항상 뛰어다니며 도망치느라 진이 빠지는 나는 도망칠 구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재미 삼아 몇 번 본 사주에서도 나에게 역마살은 없다고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것이 들켜버렸다.
소울메이트인 동갑내기 사촌과 아무 계획도 짜지 않고 비행기, 호텔만 가까스로 예약한 채 홍콩에 갔다. 무조건 도망치고 싶던 신규 간호사의 독립 약 두 달만의 일이다. 그녀 역시 평일 내내 바쁘게 일을 했다. 이대로는 못 살 것 같다며 만나서 푸념을 늘어놓으며 밥을 먹다가 무작정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허락된 시간은 매우 짧아 선택지가 한정되었다. 일단 가까워야 했고, 둘 다 안 가본 곳에 가고 싶었다. 몇 년 전, 둘이서 일본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바로 일주일 후 출발해야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7월 마지막 주말 비행기 표를 예매했고 8월의 첫 금요일 밤 열두 시 우리는 홍콩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요일 밤 12시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정확히 48시간 여행의 시작이었다.
공항에서 소호 거리의 구석에 위치한 호텔에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미션이었다. ‘옥토퍼스 카드’라 불리는 교통카드를 사고 무사히 이층 버스를 탔지만 하차가 문제였다. 한국에서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두 번 다 찍어야 한다. 내리기 전 네이버 블로그를 한참을 뒤져도 하차할 때도 교통카드를 찍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곁눈질로 눈치를 보려 했지만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까지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결국엔 영어가 통하지 않던 한 중국인 승객에게 바디랭귀지로 질문했고 찰떡같이 알아들은 그는 바디랭귀로 찍지 말라고 답변해줬다. 내려서부터 호텔까지 찾아가는 길도 온갖 퀘스트의 향연이었다. 온통 오르막길에 구글 지도는 웬 무섭게 생긴 굴다리를 통과하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용기 있는 척 굴다리를 통과하고 보니 만리장성 같이 꼬인 길도 나왔다. 어쨌든 도보 10분 거리의 길이라면서 당최 보이지 않는 호텔에 ‘그냥 택시 탈까?’라고 몇 번을 말하다 보니 어느새 호텔 앞이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첫 호텔을 소호에 잡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전 조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란콰이펑’이라는 재밌는 곳이 있다고 했다. 아쉬우니 구경만 하고 오자던 우리는 그 똑같은 길을 돌고 돌고 돌고 완전 정복을 해버렸다. 그리고선 일출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아 참, 술기운에 물인 줄 알고 녹차를 사 와 그 녹차로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기괴한 맛이었지만 건강 챙긴 인스턴트라고 다독였다. 그렇게 짐보관용으로 쓰인 첫째날 호텔을 체크아웃했다.
두 번째날은 수영장이 있는 좋은 호텔을 예약했기 때문에 짐을 싸서 또 캐리어를 끌고 이동해야 했다.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섰는데 비가 왔다. 우리에게는 우산도 작은 접이식 우산 한 개 밖에 없었고 캐리어를 하나씩 끌며 구불구불한 미스테리한 홍콩 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시간만 없는 것이 아니라 돈도 없었기 때문에 택시 탈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두 번째 호텔에 도착해 짐을 던지듯 놓고 바로 나갔다. 기념품을 하나씩 사들고(제니 쿠키를 사서 하루 종일 가지고 다녔다ㅋㅋㅋ) 맛집이라는 집에 찾아가 봤지만 완전히 한국 입맛인 우리는 거의 굶고 다녔다. 그나마 스타벅스에 들어가 간신히 커피로 배를 채우고 다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때는 바야흐로 당시 홍콩 시위대가 대대적인 파업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나온 시위 예상 구역을 아무리 피해 다녀도 그 장렬한 시위대 행렬은 어딜 가나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나 ‘심포니 오브 라이트’라는 홍콩 스타의 거리의 유명하다는 야경을 보러 갔을 땐 수많은 관광객들과 몇백 미터 앞에는 내일의 대시 위를 준비하며 길에 진을 치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며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그들을 찍다가 잠시 쉬고 있는 듯한 외신기자로 보이는 사람에게 저들이 무엇을 외치고 있냐고 물었다. “민주주의”였다. 겪어보지 못했지만 한국의 1980년도를 보고 있는 듯했다.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는 와중에 밤이 다가왔고 어쨌거나 우리는 여행자의 본분을 다하기로 했다. 그 제니 쿠키들을 들고 또다시 란콰이펑으로 갔다. 란콰이펑을 우리 집안 내력인 대단한 흥으로 불사 지르고 또 아침해와 함께 호텔로 들어갔다.
약 네 시간의 수면 후 겨우 움직이는 몸을 이끌고 나왔다. 짐가방을 호텔에 맡기고 남은 12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역시나 다시 도전한 소문난 맛집은 우리 입맛과 달랐고 유명 쇼핑몰이나 관광지보다는 홍콩 남부의 바닷가를 향해 버스를 탔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여서 그런지 비는 계속 추적추적 왔고 무겁다며 우산 없이 다닌 우리는 호텔에서 가져온 종이 지도 한 장을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처럼 쓰고 뛰어다녔다. 모래사장은 비를 막아줄 곳이 없어 주차장 나무 밑에 다 찢어진 지도를 깔고 누워 분위기 있는 팝송을 틀었다. 분위기는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그렇게 세상 자유로움을 느끼며 오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서양인들이 몰려있던 중년의 서양 여성이 디제잉을 하던 카페에 들어가 바다를 하염없이 봤다. 그 기분은 마치 우리가 몰타 섬에 와있는 듯 만들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여덟 시간 정도, 다시 구룡 쪽으로 돌아갔다. 홍콩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진짜 맛있는걸 꼭 먹어보자며 이번에도 열심히 검색 후에 몽콕 야시장의 한 덮밥집에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가격에 둘이 연어덮밥 하나를 시켜먹었다. 그런데 맛도 생각지도 못한 기대 이하였다. 시간이 자꾸 가는 것이 아쉬워 거의 뛰어다니며 몽콕 거리를 다녔다. 꼭 가려고 했던 "아저씨네"라는 이름의 기념품 가게를 찾다가 낡은 시장 골목들 사이에서 길을 잃어 싸울뻔하고 아까운 시간에 애견카페가 가고 싶다 해 다투고는 상황들도 있었다. 또 호텔에서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시위대가 길을 막아 공항버스를 타지 못해 갑작스레 지하철을 타게 되었을 때 시간이 없어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그 홍콩 거리와 지하철을 무거운 캐리어를 손에 들고 액션 영화 주인공들처럼 뛰어다녔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해 생각보다 일찍 수속이 끝나 푸드코트에서 밥을 시켰다. 웬걸 밀려있던 주문에 밥은 매우 늦게 나왔고 입에 욱여넣고는 비행기를 탔다. 48시간 동안 수면 시간은 8시간이었기 때문에 비행기가 채 이륙하기도 전에 우리는 잠이 들었고 3시간의 비행 후 착륙한 후에 눈을 떴다.
매 순간 낯설고 싸움의 일촉즉발 직전인 위기 상황 투성이었지만 "어떡하지?" 보다는 "와 우리 진짜 노답이다~" 하며 서로 째려보다가도 5초도 안가 “미안해” 사과하면 “괜찮아” 하며 깔깔깔 웃어넘겼다.
여행을 자주 하지만 여행이 뭔지는 모르겠다. 해외여행도 그 해에만 해도 세 번이나 다녀왔다. 그런데 왜 그때의 홍콩 여행이 이렇게 강렬하게 뇌리에 박혔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2주 뒤 홍콩행 비행기를 다시 찾고 있었으니 말이다.(물론 당시 홍콩 시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다시 홍콩에 가는 꿈은 조금 나중에 꾸기로 했지만) 만나면 항상 즐거운 둘이지만 이렇게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것이 무슨 마법가루를 탄 것 같았다.
돈이 있어서 여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돈으로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살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맛집도 포기해야 하고 유명하다는 관광지쯤은 포기할 때도 있고 하고 택시 대신 두 다리로 삼만보 정도는 걸어볼 작정도 필요했다. 이것쯤은 가뿐하게 할 수 있다면 당신도 지쳐버린 마음에서 잠시나마 도망갈 수 있다. 나이트 근무가 끝나자마자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처음 내가 번 돈으로 엄마와 대만으로 가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달았던 흑당 밀크티를 마셨고, 어느 날 아침에는 ktx를 타고 가 버블 풀 파티장에서 인생 노을을 보며 예쁜 사진도 남겼다. 또 어떤 날은 밤을 새우고 출근했던 데이 근무가 끝나고 제주도로 날아가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하는 긴 도로를 드라이브했다.
도망쳤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만큼 예쁜 풍경과 즐거운 웃음과 예상 밖의 돌발상황들은 시간이 얼마가 지나든 추억으로 깊게 남는다. 그러다가 너무너무 힘들 때 "아 예쁘다~" 남발했던 잠시 아무 생각 없이 좋았던 그 기억 상자를 열어보면 된다. 당일치기라도 여행을 갔다 오는 길에 항상 나 스스로에게 이번 여행은 며칠짜리의 행복이었는지 평가를 내린다. 예를 들면 홍콩 여행은 한 달 치 행복이었다.
이 글이 당신에게 떠나는 것에 대한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나의 홍콩에 당신을 잠시 데려갔다 왔다면 그걸로 됐다. 조금의 도망과 휴식은 어쩌면 쉼 이후의 당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자, 언제 어디로 떠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