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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정 Dec 02. 2020

좋은놈 or 나쁜놈

  열이 나서 병원에 왔다는 그는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듣고나서야 해당 병동인 소화기내과로 전동 올 수 있었다. 그는 50대 초반의 알콜성 간경화환자였다.  이브닝 근무의 저녁 8시, 각종 항생제를 비롯한 주사약들을 투약해야 하는 바쁜 시간에 전동을 와서는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배 아프다니깐 왜 아무것도 안해주냐고!" 나는 그를 방금 처음 보았고 아직 전동 오기 전 병동에서 인수인계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가 배가 아픈지 그의 화난 목소리로 처음 듣게되었다. "에이 00님, 우리 만난지 1분 된 거 같은데 저한테 짜증내시면 어떡해요~ 제가 당직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보고 바로 올게요." 이어서 그는 "아 제가 선생님한테 화난거 아니에요. 죄송해요." 뭐지? 싶었다. 착함과 나쁨이 공존하는 사람이었다. 서둘러 인수인계를 받고 당직의에게 환자의 진통제 투약여부에 대해 물었다. 곧바로 진통제 처방이 났고 약이 도착하는대로 그에게 주사했다. 그는 왜이렇게 늦게 오냐며 다시 꾸지람을 놓았다. 혈액 검사 결과 중 지혈수치가 낮아 FFP(신선동결혈장)도 6개나 처방이 난 걸 보아 앞으로 꽤나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상했던대로 며칠 후 병동에서 그는 요주의 환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을 의료진들과 입씨름을 하다가 결국 자의퇴원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 눈에띄는 그의 이름은 다시 병동에서 볼 수 있었다.      

 

 간이 조금 더 안 좋아져 간성혼수로 응급실에 왔고 역시나 소화기내과 입원을 했다. 아, 알코올은 퇴원 후 다시 지속적으로 들어갔으리라 추측된다. 일반병동은 보호자 상주가 필수조건이었으며 간성혼수 환자들에게는 특히나 더 적용이 필요했다. 순식간에 상태가 악화되어 인격이 변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거의 유일한 치료라고 하는 관장의 전, 후 까지 담당 간호사 한 명이 옆에서 지키고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혼인 그의 법적보호자는 부모님이었다. EMR의 간호기본정보 속에 있던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00님 보호자시죠? 00님 담당 간호사에요. 아드님이 간성혼수로 치료과정중에 보호자가 꼭 필요해서 연락드려요. 병원에 언제쯤 오실 수 있으실까요?" 

"난 80이 넘었고 파킨슨 환자라 못가."

"그럼 혹시 어머니는 오실 수 있나요?" 

"저사람은 더 힘들어. 우리는 못가."

"보호자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저희가 옆에서 계속 볼수가 없어서요. 간병인이라도 쓰셔야 될 것 같아요."

"돈이 어딨어. 우리는 안가니까 앞으로 전화하지마." 라며 전화가 뚝 끊겼지만 이틀에 한 번 정도는 아침마다 “우리 아들 잘 잤나요?” 라는 전화가 병동으로 걸려오기도 했다. 어린이집 낮잠시간처럼 말이다.     


  환자는 간성혼수가 심해져 섬망, 낙상, 각종 욕설, 타환자 위협, 간호사 협박 등 용인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후에는 간호사 6명이 옆에 붙고도 부족해 안전보안팀 직원까지 동원해 환자를 안정시키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전화하지 말라는 환자의 80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행청소년의 담임 선생님이라도 된 양 그 날 환자와 있었던 사건 사고를 언급했으며 결론은 보호자가 꼭 필요하다 였다. 나도 참 나쁜 간호사다. 80이 넘은 연로하시고 편찮으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화를 해 젊은 사람도 힘든 간호를 하라고 독촉을 했으니 말이다. 결국 노부부는 환자의 상태를 보러 병원에 못이기는 척 왔고 직접 눈으로 본 현장과 주치의의 입김에 간병인을 고용했다. 간성혼수라는 급격히 악화되었다가 급격히 호전되기도 하는 증상의 특성상 그도 며칠의 고군분투 후 컨디션이 다소 양호해져 퇴원까지 할 수 있었다.     


  그의 퇴원 날, 병원 전산 시스템의 문제로 가퇴원을 가게 되었고, 이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한 상태였다. 그 역시도 이해한 상태였다. 그를 보내고 부리나케 데이 업무의 마무리를 짓고 있는데 그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간호사실로 다가왔다. 그를 퇴원 보낸 담당간호사인 나는 하필이면 그 때 간호사실 가장 앞쪽 컴퓨터를 쓰고 있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매서운 눈으로 크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나 돈 있는데 왜 가퇴원을 시켜? 너 지금 나 무시하는거지? 나도 돈 있다고! 일 똑바로 해 너." 라며 눈에 불을 켰다. 사람들은 죄다 무슨일인가 궁금해 발걸음을 멈추고 관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 논리는 무논리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머리를 스치며 그저 내가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 제가 말씀드렸을 때 알겠다고 하셨었는데... 오늘 병원에서 병원비 계산하는 컴퓨터가 문제가 있나봐요. 그래서 가퇴원으로밖에 못가시게 되셨네요. 죄송해요." 이어 환자는 다시 순하진 않지만 보통 정도의 양이 되어 대답했다. "그렇게 말해야지. 그리고 나 돈 있으니깐 너네들 일 똑바로해." "네, 알겠어요. 죄송해요." 이렇게 소란스러운 퇴원 이후 나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그의 입퇴원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전 그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죽음의 직전 그는 내 동기에게 "간호사님들이 잘 봐주신게 제일 고마워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병동에서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서는 미안하다며 항상 편의점에 가 소라빵 같은 옛날 과자들을 잔뜩 사오기도 했다. 정말 끝까지 미워할 수는 없는 그의 모습 그대로 떠났다. 입원예정환자에 그의 이름이 보일 때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 그는 참 요상한 능력으로 나에게 미안한 감정까지 느끼게 만든다. 착한 사람은 마음에 병이 더 잘 든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착한 사람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기까지 얼마나 무수한 고난과 역경이 그들을 공격했을지 마음이 저리다.      


  그와는 조금 다른 사례인 간암 남자환자가 있었다. 간암의 뇌 전이로 뇌 절제술을 받았던 이력도 있고 여전히 경구항암제와 진통제롤 암과 맞서 싸우는 환자였다. 그에게는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도 있었고 시각장애도 있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폭력적인 모습과 매우 거친 언어로 항상 의료진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보이는 언행은 양반이었다. 보호자인 아내에게 하는 욕설을 만약 당신이 들었다면 두 눈이 동그래지다 못해 심장이 벌렁벌렁 뛸지도 모른다. 내가 신규 간호사때 그를 처음 봤을 때 너무 무서워 심호흡이라도 한 번 하고 인사를 건네곤 했으니 말이다. 그에게 주사를 두 번 찌르는 날이면 정말 몇 년 치 들을 창의적인 거친 말을 들어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에 그의 아내가 있다.      

  오랜 병원 생활로 많은 간호사들과 친분을 쌓고 가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척 이모같은 느낌이기도 했다. 가끔 나이트 때, 모두가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려오면 역시나 그녀가 오물처리실에서 걸레를 꺼내와 복도 물걸레 청소를 하고있었다. "혹시 뭐 흘리셨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라고 말하면 그녀는 "아니, 내가 좋아서 하는거야. 신경 안쓰셔도 됩니다. 선생님~" 괜히 일하기 싫은 날이면 전인간호라는 핑계로 환자, 보호자들에게 오지랖을 부리며 대화를 나누던 터라 그녀가 청소하는 이유도 알게되었다. "우리 남편이 조금 극성이잖아. 미안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는거야. 그래도 남편이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요~" 그녀는 항상 그렇듯 세상에서 가장 밝은 목소리로 노래하듯 멜로디를 넣어 말해주었다." 그의 보호자인 아내와의 만남은 병원에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녀의 아내는 환자를 간병하던 간병인이었고 그녀의 정성스러운 간병에 그들은 법적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환자는 주변에서 아내 목소리가 들릴지 않으면 바로 감정표현을 했다. "이 xxx, 어디갔어!" 보통 소리가 아니다. 복도가 울릴 정도의 고함이다. 그의 옆 침대에 있던 어떤 환자는 그가 무섭다며 병실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날도 있었다. 낮잠을 자다가도 병실에서 몇미터 떨어진 휴게실에 있는 아내를 찾느라 혼자 이동하려 해 낙상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때, 라운딩을 하던 간호사에게 "선생님, 제가요 저희 와이프를 너무 사랑해요." 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의 거친 사랑표현들이 방어기제였을 것이라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어기제란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 용어이다. 내부에서 나오는 충동을 억제하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내적 갈등이 발생하거나 외부 환경의 요구와 자아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때 생기는 불안으로부터 자아를 방어하는 책략들을 일컫는다.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1917)에서는 인간의 정신이 원초적인 욕구에 지배당하는 원초아(id), 사회의 도덕적 규범에 따르려는 초자아(superego),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조정하는 자아(ego)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자아가 원초아의 욕구와 초자아의 요구 사이에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원초아의 욕구가 강해지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방어 기제이다. 방어 기제의 주된 역할은 심리적인 안정감을 유지하는 것으로, 죄책감이나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존감을 보호하는 것이다. 방어 기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상에 사용하고 있으며, 다만 이러한 방어 기제가 지나치게 사용되는 경우 정신 병리와 연관될 수 있다고 프로이트는 설명했다.      


  환자 자신들이 한없이 약해져 어디엔가 기대고 싶을 때, 하지만 "당신한테 기대도 되나요?" 라고 표현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안타깝게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내 옆에 있어주세요."를 표현하는 것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쓰는 표현 중 '지푸라기라도 잡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들은 그 지푸라기를 너무 꽉 잡다보니 지푸라기를 뭉개버린 것이다. 정형화된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렇게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 도무지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표현이 조금 미성숙한 옆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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