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아나바다 운동을 하자. ‘아나바다’ 운동은 물건을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기를 통해 불펼요한 소비를 줄이자는 뜻이다. 즉, 미운 마음은 아끼고 걱정은 나누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며 바꾸고 행복했던 기억은 다시 쓰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비를 줄이자는 의미로 모두가 지금보다 한 번 더 웃었으면 좋겠다.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행복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또 인간의 행복은 개인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른 내용을 갖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행복추구권은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불행하지 않을 권리라고 할 수 있다.
헌법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행복은 당연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이 사치라 생각하는 나와 당신을 위해 어쩌면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일기처럼 적어나간 나의 글이 어쩌면 당신의 일기일지도 모른다는 호기심이 발단이었다. '행복하고싶다'는 집착은 사람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한다. 아마도 행복하고싶어=지금은 행복하지 않아=지금 난 불행해 의 맥락이 되어 자신을 불쌍히 여기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행복함을 잊어버리고 살았거나 제 몫의 행복을 넘어 남의 몫까지 탐내지는 않았나 한다. 오직 나만을 위해 마련되어 있던 삶을 거부하려 할수록 그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몰래 산타'라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산타가 되어 선물 전달 및 이벤트를 하는 일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팀원들이 모여 분장을 하고 한 달동네를 찾았다. 가파른 빙판길에 한 발 나서는 것 조차 무서운 골목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집을 두드렸다. 왜소증 아버지와 8살 아이가 살고 있는 원룸이었다.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열악했다. 아이는 몸이 불편한 아버지의 집안일을 돕는다고 집안 곳곳에는 아이가 밟고 올라설만한 받침대가 있었고, 가스레인지가 아닌 부루스터로 식사 준비를 하느라 작은 집의 한쪽에는 부탄가스들이 쌓여있었다. 어린 아이는 산타와 루돌프 분장을 한 형, 누나를 보고 잔뜩 신이 난 표정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사회자를 맡은 나는 차마 거짓말을 칠 수 없어 잠시 눈맞춤을 피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떠나기 전, 인사를 하며 "00아, 오늘 산타도 보고, 루돌프도 보고 기분이 너무 좋겠다~" 말을 건넸다. 아이는 "저는 매일 기분 좋아요!" 라고 대답하며 꺄르르 웃었다. 그걸로 된거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본 적은 없다. 나도 당신으로 살아보지 못했고, 당신도 나로 살아보지 못했다.
글을 적어나가면서 당신과 나에게도 적어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정답 없는 행복에 물음표를 달지 않고 그저 스스로 정말 괜찮은 채 사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행복을 의심하지 말고 부디 우리는 주지 않아도 될 상처 주지 않고, 받지 않아도 될 상처 받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당신의 N번째 사춘기에 나라는 사람도 함께 있음을 알리며 이 긴 수다를 마치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