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간경화 환자인 그는 입퇴원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괄괄한 성격을 병동 내에 열심히 소문내고 있었다. 이번 입원 시에는 간에 농양이 차서 이전 입원시보다 더 집중 치료를 필요로 했다. 간 농양이란 세균이나 기생충이 간 내부에서 감염과 염증을 일으킨 후 정상 간세포가 파괴된 자리에 고름집(농양)이 형성되는 것으로 치료를 위해서 매일 수액과 항생제 주사가 주입되고 있었다. 평화롭던 어느 오후, 그는 피가 흐르는 팔과 어딘가 허전한 수액 줄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화장실을 가려고 침상에서 일어나다가 주사가 빠져버린 것이다.
웃는 얼굴로 주사를 놓으러 갔다. “한 번에 못하면 나 주사 안 맞아.” 그의 1차 경고였다. “에이, 제가 잘해볼게요.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너스레를 한 번 떨고 토니켓을 묶어 혈관 확보를 했다. 찔렀다. 1초도 되지 않았지만 느껴졌다. 혈관이 터져버렸다. 고개를 살짝 들어 그에게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죄송하ㅂ..ㄴ..ㅣ” 죄송하다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사를 놓기 위해 준비해간 준비물들과 트레이가 눈앞에서 날아갔고 주사 바늘은 내 유니폼 위로 떨어졌다. “잘한다며. 잘해본다며. 나 안해. 주사 안맞아. 아주 사람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어.” (온갖 육두문자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런 수모는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바늘이 내 몸 위로 날아왔다.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황인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밀어닥쳤다. “주사 안맞으신다는거죠?”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며 남아있는 모든 인내를 끌어모아 최대한 예의를 지켜 물어봤다. 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안해. 니가 못해서 안 맞을거고 너 때문에 치료 안받을거야. 내가 나빠져도 내가 죽어도 너 때문이니까 니가 책임져.” 라고 큰 소리를 쳤다. “그래요.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그런데 제 맘대로 결정할 수 없고요 주치의 선생님이랑 얘기하세요” 라며 자존심을 부리며 병실을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나의 감정 아지트였던 비상구 계단에 숨었다. 나 때문에 치료를 안받는다니? 나보고 책임지라니? 그렇다고 바늘을 던져?
간신히 눈물을 닦고 간호사실에 있던 주치의한테 투정부리듯 상황 설명을 했다. “선생님, 이 환자 IV 루트 한 번 실패했는데요, 항생제 포함해서 모든 주사제 처치 거부하고요 앞으로 아무 치료도 안 받겠다고 합니다. 어떡하죠?” 환자를 살피고 온 주치의가 말했다. “그러게요... 안 될 것 같네요. 자의퇴원까지 이야기하는데 일단 안정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죠.” ‘너 때문이야!!’ 하는 소리가 메아리치는 듯 했다. 전산 속 인수인계장에 적혀있는 ‘IV 거부’ 라는 글씨도 나를 괴롭혔다. 왠지 모르게 ‘간호사 거부’로만 보였다. 그가 나에게 또 어떤 상처를 주고 나는 또 어떤 상처를 받을까 무서워하며 근무를 했다.
퇴원을 고집하던 그의 퇴원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환자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이름을 불러도 겨우 눈을 뜨는 듯 했고 다시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간신히 옷을 갈아입고 복도를 휘청거리며 걸어다녔고 초점 없는 눈동자와 불러도 대답없는 뒷모습이 의심스러워졌다. 간경화 환자의 컨디션 저하시 으레 발생하는 간성혼수가 그에게도 찾아온 것이었다.
간성혼수(정확히는 간성뇌증이라고 한다, hepatic encephalopathy)란 우리 몸에서 대사 작용과 해독작용을 하는 간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해독되지 않은 피가 뇌에 영향을 미처 의식장애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키는 질병 상태이다. 그 정확한 기전은 확실치 않으나 장내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암모니아가 주요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평상시의 성격이나 행동이 약간 변하는 것부터 시작해 의식 상태가 수시로 달라지거나 밤낮이 바뀌는 경우, 심하게는 통증에도 반응이 없는 깊은 혼수 상태까지 다양한 양상을 보일 수 있다. 발생 기전이 확실치 않아 현재 임상에서도 예방법이나 치료법은 한계가 있다. 바로 락툴로오스(대장 내 pH를 낮추는 효과를 가진 하제) 관장이다. 장내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암모니아의 발생을 줄이고 이미 발생한 암모니아를 신속히 배출시키기 위한 것이며 관장액이 30분 이상 장내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환자와 간호사 모두가 힘든 시간이다. 보통의 경우 일반병동에서 그 역할은 보호자의 몫이지만 이 환자처럼 보호자가 없는 경우는 그 역할을 오롯이 간호사가 대신해야만 한다. 그는 보호자가 없었다. 나와의 지겨운 시간이 또 시작된 것이다.
어느새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폭력적으로 변해버린 그의 곁에 간호사 두 명, 첫 출근을 한 간호조무사 한 명이 붙었다. 환자의 위로 올라가 양 팔, 양 다리를 붙잡고 관장을 하고 약물이 체내에 있게 하는 30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의 의식이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천하장사와 30분의 씨름을 한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간성혼수 환자들의 힘은 평소보다 몇 곱절이나 강해져있고 그들의 입에는 차마 담기도 힘든 언어들이 주문처럼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한 겨울이지만 온 몸은 땀으로 젖었고 양 팔은 후들거렸다. 어린 간호사 둘은 반대편 빈 침상에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그 날 첫 근무였던 간호조무사는 스물 다섯, 스물 여섯의 간호사에게 말했다. “어우, 우리 딸은 이런 거 못할 것 같아요.” 첫째,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다니 정말 멋지시다. 둘째, 어떻게 이런 일을 해? 라는 의미로 들렸다. 그 중 후자가 더 맞는 의미였을 거다. 정말 거칠고 험한 시간들이다. 때로는 간성혼수 환자들에게 간호사 5명이 붙을 때도 있고 그걸로도 모자라 원내 안전보안팀 직원까지 호출하는 일이 허다한 곳이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소화기내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한집 딸들은 개인적 감정 하나 없이 ‘이런 거’를 해내고 있었다. 트레이가 던져졌어도, 욕설이 쏟아졌어도 똑같이 행동하지 않은 우리는 간호사였고 그 안에는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 같은 것들이 섞여있었다. 애초에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주사를 잘 놓고 싶었으며 그가 계속해서 치료받도록 설득하고 싶었고 그가 빨리 간성혼수에서 깨어나기를 바랐다.
취미는 한강 자전거 라이딩이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평소 사람이 거의 지나지 않는 길에 여러 명의 사람들이 구경이라도 난 듯 모여있었다. 관심을 두지 않고 지나쳐가다가 “피 좀 봐” 소리에 자전거를 멈췄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대충 군중의 말을 빌리자면 주차하던 차량과 살짝 부딪힌 후 뒤로 넘어졌고 피가 많이 났으며 미동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다 들었을 무렵 현장에 경찰차가 도착했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경찰에게 물었다. “제가 간호산데요, 잠깐 환자 좀 봐도 될까요?”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숫기가 없어서 음식점에 가서도 여기가 마치 유럽인듯 손만 조용히 들고 저기요 하고 직원 한 번 부르지 못하는 사람이다. 경찰은 “어휴, 감사하죠, 선생님.” 이라며 흔쾌히 허락했고 조심히 미동 없는 여자를 살폈다. 맥박과 호흡은 정상이었다. 문제는 눈동자였다. 오른쪽 눈은 위쪽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동공은 휴대폰의 플래쉬를 비춰봐도 조금의 반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코로 흐른 투명한 액체를 보아 혹시 뇌척수액이지 않을까하며 뇌출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바로 몸의 다른 출혈 부위를 찾아 지혈을 도우고 있을 때쯤 119 응급구조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나에게 아주 간단한 인계를 듣고 환자 확인을 했다. 내가 사정한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무능력한 간호사가 아니야.’ 라고 위로를 받는 듯했다. 환자 또는 보호자들의 한 마디 한마디에 화가 치솟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참 간호사를 못 할 사람이라고 수천 번 생각했었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가슴이 맞다고 했다. 어쩌면 천직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