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무명으로 시작하긴 하지만, 무명의 서러움보다 더 힘든 게 무명에 대한 편견이다. 미국의 어느 프리랜서 작가가 시험 삼아 6년 전에 <전미 도서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코진스키의 <계단>이라는 작품의 앞부분 21페이지를 가명을 사용해 출판사에 보냈다. 네 개 출판사 모두 원고를 거절했다. 2년 뒤에는 <계단>이라는 책을 출판한 랜덤하우스를 포함해 27개 출판사와 관계자에서 <계단> 원고 전체를 보내봤다. 모든 출판사에서 거절했고 해당 원고가 이미 출판되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상을 수상했다는 것조차 아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무명이란 본래 이런 것이다. <언어의 온도>라는 작품으로 수백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기주 작가도 무명 시절 서점 관계자가 아예 만나주지도 않거나 한 시간 넘겨 기다려 잠시 만나주더라는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미사리 '라이브' 카페 촌에 갈 때마다 느끼는 일인데 재능은 있지만, 무명으로 끝나는 소위 '언더'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독한 무명 시절을 거쳐 보란 듯이 유명 예능인으로 부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름 석자조차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쓸쓸히 퇴장하는 일이 흔하다. 이는 공연 예술계도 마찬가지다. 연극 예술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던 한 영문과 교수가, 대기업 대졸 초임이 월 30만 원쯤 할 때, 연극인들의 평균 수입은 5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던 기억이 난다.
뼈저린 가난에 대한 체험은 역사를 통해 보면 훌륭한 예술의 영감을 제공하는 자양분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예술가 당사자에게는 극한의 실존적 고통을 안겨준다. 헤밍웨이나 서머싯 모음처럼 작가가 생전에 명성과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성경, 해리 포터, 자본론 다음으로 세계적으로 널리 읽힌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페리도 작품 활동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비행이나 비행 관련 특허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다.
지인 중에 유명 미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시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 시간 강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어 엄두를 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마침 헤이리의 유명 이태리 음식점 1층에 위치한 갤러리의 대표를 알고 있어 무료로 대관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 후 그는 용기를 내어 첫 전시를 했고 그 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전공 관련한 정규직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예술가는 따로 정년이 없으니 그의 작품 가격이 이우환 작가에 필적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