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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Oct 19. 2024

푸른 꽃처럼 아름답게 열망하라

아름답게 열망하라


 

Enthusiasm moves the world.

열정이 세상을 움직인다.

아서 밸푸어 Arthur Balfour 영국의 정치인

I prefer the folly of enthusiasm to the indifference of wisdom.

나는 냉철한 지혜보다 무모한 열정을 더 좋아한다.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 프랑스의 소설가

 

아름답게 열망하라

언젠가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시가지를 차로 달리고 있을 때다. 약간 한적한 공터가 나타난다 싶더니 왼편으로 공동묘지가 보였다. 햇살이 눈부신 탓도 있었으나 대도시 속에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습이 평화롭기까지 해 묘지가 주는 음울한 기운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화해도 죽음은 아름다울 수 없다. 죽음에선 온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온기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살아있는 생명체 그중에서도 열정을 가진 인간으로부터 나온다. 간절히, 열렬하게 원하는 마음이 열망이고, 열망을 이루기 위한 추진체가 바로 열정이다.

 

열망이 강렬하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문화권에서는 대부분 안으로만 타오르기에 보암보암으로 짐작할 뿐이다. 자칫 시퉁스러운 사람으로 낙인찍힐 수 있으니 자신의 감정을 감추도록 어릴 적부터 끊임없이 학습된 탓이다. 그 사슬을 끊은 후 열망을 표출하고 공식화해야 지속할 수 있다. 열망은 원대할수록 좋다. 사람이란 쉬운 목표에는 쉽사리 싫증을 내게 마련이다. 십 미터를 훌쩍 넘긴 저 키 큰 소나무도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저렇듯 하늘로 치솟은 것은 그 속에 내재한 열망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신라 천년 왕국도 서라벌이란 마을에서 시작했듯이 열망도 작은 것부터 출발해 점차 크기를 늘려 나가야 한다.

 

문명이 강가를 중심으로 피어났듯이 로맨틱한 인간의 사랑은 대체로 강을 매개로 이루어졌다. 오래전 북한강변도로를 지나다 우연히 들른 ‘푸른 꽃’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불과 29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작가 노발리스의 작품을 모티프로 지은 이름인 듯했다. 사랑과 욕망, 무한한 열정을 상징하는 ‘푸른 꽃’의 내력에다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강변과 레스토랑의 야경에 끌려 가끔 그곳을 찾곤 했다. 강은 물리적인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생명의 원천인 물과 단백질의 공급원이다 보니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여유롭게 하는 힘이 있다. 그곳에 더 이상 가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신비한 마력으로 나를 이끄는 그 레스토랑을 이따금 떠올리곤 했다. 언젠가 다시 한번 가려고 별렀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몇 년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마침 그곳을 지날 일이 있어 들러보니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열망이란 이런 것이다. 생각났을 때 바로 실행해야지 미루면 타고 남은 재처럼 되고 만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어디에 있든 당장 길을 떠나고, 성취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바로 결행해야지 모든 여건이 완비될 때까지 맥쩍게 기다리다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다. 그것이 인생이고 변치 않는 기회의 속성이기도 하다.

 

실수를 딛고 큰 시인(大詩人)이 된 미당

노년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겪는 어려움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슬플 수밖에 없는 유일한 이유는 가슴에서 타오르던 불길이 식은 때문이다. 하지만 미당 서정주처럼 열망을 간직하고 열정적으로 생활한다면 우리가 통상 말하는 노년을 적어도 십오 년은 늦출 수 있다. 미당이 시상을 떠올리면서 손길이 수없이 닿았을 원형 탁자에 가볍게 손을 대보며 잠시 상념에 빠진다. 머피의 법칙에도 있듯이 잘못 보다도 잘못을 감추려던 시도가 발각될 때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겪는다. 서정주는 동서양을 통틀어 유독 단명한 사람이 많은 시문학계에서 향년 86세까지 사는 등 장수를 누리고 노년에도 왕성한 시작(詩作) 활동을 펼쳤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 시인으로 큰 사랑을 받고 세계일주까지 하는 등 성공적인 삶을 누렸지만, 젊은 시절 암울한 나라의 현실에 절망한 나머지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실수를 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는 과오를 인정하고 서정시인으로 돌아와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자칭 예지가 뛰어나다고 하는 인간이지만, 앞날까지 내다보며 처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미당은 분명히 자신의 넘치는(spontaneous overflow) 서정을 주체하지 못해 좋은 작품을 발표했을 테지만, 시공을 초월해 인간이 지닌 아름다운 감성을 흔들어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청년들이 여의치 않은 현실에 좌절해 맛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 물질적인 보상이든 무형적인 보답이든 목표를 정해 놓고 한 걸음씩 다가가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이른다. 이를 가능케 하는 밑불이 바로 열망이다. 열망이 사랑과 결합하면 지팡이에서도 푸른 꽃이 피는 기적이 일어나고 일과 만나면 성공의 신화를 낳는다. 더불어 일상에서 마주치는 잔잔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현실과 꿈이 조화를 이루는 삶에 도달할 수 있다. 열정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거뜬히 이겨내 푸른 꽃처럼 아름답게 열망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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