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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 Aug 12. 2021

훈계질

수다


무심해진다는 것이 엄청 어렵다. 마음이 상한다는 것은 그곳을 향해 마음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 힘들면 닫으면 된다. 아무리 닫아도 너무 떠들어서 닫으나 마나다. 닫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 놓고 더 떠들어대니 소음 지옥에 갇힌 것 같다. 닫음으로 인하여 그들의 소음의 영역은 넓어지고  투명인처럼 보호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불안하니 주위를 살피게 되고 그래서 주위에 휘둘리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고 가면 된다. 어차피 세상을 다 좋아할 수 없다. 다 인정받을 수는 없다. 우선 내가 나를 믿고 나를 좋아하면 된다. 싫은 것은 정확히 싫다고 하자. 눈치 보고 비위 맞추느라 어중간하게 걸쳐 있지 말자.


게걸스러운 수다를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린다. 들리니 판단이 생긴다. 그 판단을 무시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인다. 관계없는 수다여서 정말 지겹다. 안 들리면 괜찮을 텐데 못 들은 척하기 어렵다. 들었어도 그냥 흘러가버렸으면 좋겠다. 듣기 싫으니 더 들리고 판단하지 않으려 하니 인격적인 판단까지 하게 된다. 입은 있는데 말하지 못하니 정말 뛰쳐나가고 싶다.


꽃게가 옆으로 걸으면서 새끼들에게 똑바로 걸으라 한다더니 부정적으로 살지 말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 한다. 긍정은 기대도 되지 않으니 자기나 부정적으로 살 것이지 웬 간섭인지. 한마디로 자기 수다를 다 긍정적으로 들으라는 것이다. 못 들은 척하는 것도 힘든데 듣고 새기라는 건 웬 망상인 것인지. 그것마저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내보내는 것이 긍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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