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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 Aug 11. 2021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옥수수


딸이 회사에 선물로 들어온 옥수수를 두 박스나 가져왔다. 찐 옥수수를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그 무거운 것을 들고 온 것이다. 성의가 좋아서 옥수수를 다듬고 삶아서 냉동고에 넣느라 제정신이 아니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양도 엄청나고 보관할 곳이 필요했다. 


냉동고를 분리해 김치냉장고로 쓰던 곳을 다시 정리해서 냉동고로 돌렸다. 김치냉장고 속 묵은 김치 정리하느라 또 고생했다. 먹지도 않을 것을 저장하다 결국 버리게 되는 고질병을 좀 개선해야 되겠다는 또 결심했다. 음식물을 바로 버리기가 아까워 저장해 놓고 먹지도 않아 결국 냉장고 속에서 변하여 쓰레기가 되어야 치우니 더 고생이다.


퇴근하고 몇 시간 동안 일하고 나니 밤 12시가 훌쩍 넘어간다. 몸으로 일하는 것은 젬병이다. 손끝이 아프고 팔은 옥수수 잎에 스쳐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다. 너무 피곤하니 잠도 오지 않는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거리다 일어나 아침에 마저 정리했다. 


사람 입으로 먹을 것이 들어가게 하는 일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힘든지 새삼 깨달았다. 땅을 파서 고르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여 포장해서 보내고 그것을 다듬어서 찌고 보관하여 먹는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옥수수가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관여한 모르는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할 일이다. 


딸은 공짜로 얻은 것이니 상하면 버리면 되는데 왜 그리 한꺼번에 하려고 해서 고생하느냐 하지만 먹을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다. 물론 내 몸이 먼저이긴 하다. 몸을 먼저 챙기라는 말을 하려는 것인 줄은 안다. 오밤중에 퇴근하면서 옥수수 박스를 5층까지 계단을 오르내리며 날라 온 딸의 노고와 배려도 무시할 수 없어 하나도 버리기 아까웠다. 그래도 힘들다. 힘든 것 따로 고마운 것 따로이다.


냉동고 반쪽을 차지하고 있는 옥수수를 보니 뿌듯하다. 코로나로 인해 농산물 유통이 안 되어 옥수수가 남아 돌 지경이라 한다. 그 누군가의 배려로 나에게까지 온 옥수수를 몇 달 동안 잘 먹어주어야겠다. 부자가 된 토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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