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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 Aug 09. 2021

겨 묻었나?

나를 알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는 주위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 특히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그 권력을 폭력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피해가 더 크다. 권력을 가진 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는 더욱더 치료가 어렵다. 권력이 문제를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긴 하지만 피할 수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될까.     


공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방어보다는 그로부터 보호할 대체 수단이 무엇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기가 정상이고 남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경우 대부분 본인이 비정상이고 남이 정상일 경우가 흔하다. 비정상인 사람이 오히려 자신이 정상이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정상인들이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만든다. 이런 애매모호한 판단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완전체라도 되는 양 남을 판단하고 비난하며 단점을 산처럼 확대하여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 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괜한 말이 아니다. 자기를 내세워야만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나갈 수 있는 사회에서 상대를 이기려면 본인을 성장시키는 것보다 상대를 쓰러트리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정면도전보다 꼼수로 비겁하게 승리하려는 것이다.     


남을 알고 나를 알아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남을 알려면 우선 나를 아는 것이 먼저이다. 나와 남을 알면 적절한 판단 능력이 생기고 대처하기가 수월해진다. 이런 앎은 남을 이기는 것보다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남이 나의 거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와 나 우리가 소속된 사회의 시스템을 알게 되고 자연스레 합류하게 된다.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지식이나 정보는 일시적일 뿐이다. 서로에 대한 앎이 배려로 삶의 지혜로 확장되어가고 그렇게 우리는 더불어 가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정신적 문제는 혼자 설 수 없을 때를 이르는 것이다. 우리의 서로에 대한 앎이 그 정신적 문제를 해결해 준다. 더불어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힘을 얻는다. 그 힘이 모든 불안을 해소하며 살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현실에 필요한 것이다. 살아가거나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문구이다. 나 자신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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