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저작권

창작과 보호

by 오순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시를 지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그 시절 참고서가 아주 귀하던 때이라 교과서 외에 참고할 그 무엇도 없었다. 물론 인터넷도 없었다. 흑백 티브이와 라디오가 전부였다. 산수라면 몰라도 시에 대한 것을 부모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동안 학교 수업시간에 읽고 배웠던 동시들을 생각하면서 숙제를 하려고 노트와 연필을 들고 마루에 엎드렸다.


마침 비가 내려 ‘비’라는 시를 짓기로 마음먹었다. 처마 밑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뭘 쓰지?' 하면서 멍 때리고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듯 아무것도 없는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쥐어짜듯 머리를 쥐 뜯어 가며 조금씩 조금씩 적어 내려갔다. 시작이 문제이었나 보다. 시작을 하니 그다음은 좀 더 수월하게 내용들을 이어 쓸 수 있었다. 썼다 지웠다 다른 말로 바꿔도 보며 최종 퇴고까지 두어 시간 걸린 듯하다.


완성된 시를 읽어보니 썩 괜찮다 싶어 뿌듯했다. 다음날 학교에 가 숙제를 제출했다. 며칠이 지나 담임선생님이 불렀다. 이 시를 '네가 쓴 것 맞느냐' '어디서 베낀 거 아니냐'라고 묻는다. 베낀 거라면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베낀 것이 아니고 내가 지었다고 하니 정말이냐며 몇 번이나 채근하였다. 그러고도 담임선생님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그 선생님의 눈빛에 마음이 무척 상했다.


그때 담임선생님한테 의심이 아닌 칭찬을 받았으면 어떠했을까. 선생님은 그때 최선을 다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을 살펴주지는 못했다. 아이의 눈빛에 비쳤을 그 상처는 아이의 마음속 깊이깊이 내려가 버렸다. 그래서 본인도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담임선생님을 무척이나 존경하고 따르며 하라는 것은 무조건 따라 했던 모범생이었다. 그 뒤로 아이는 의식하지는 못하는 사이에 거리를 두고 담임선생님을 바라보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어른이 되어 어느 날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 물론 오랫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나는 시를 짓고 있지는 않다. 꼭 그때의 상처로 인해서 시를 짓지 않은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때 내가 창작에 대한 상처를 받았구나, 저작권에 대한 침해를 받았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냥 그렇게 그때 그 상처가 고스란히 내가 다가왔다. 그때 칭찬과 창작에 대한 격려를 받았더라면 지금 나는 저작권 있는 시집을 발행하며 살아가는 시인이 되어 있었을까?


어린 내가 봐도 그때 그 시가 참 매끄럽고 리듬감이 있어 진짜 괜찮다는 기억이 생생하다.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도 않고 기록도 없다. 마치 꿈속에서 멋진 창작을 하여 너무 기뻐하다 잠에서 깨어났는데, 그것을 잊어버릴까 부랴부랴 펜을 들었을 때 답답이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내용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멋진 작품이라는 기억만 생생하여 답답하고 안타까움만 남아 있다.


저작권이 무엇인지, 저작권에 대한 영역이 어디까지 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그때의 나에게 창작에 대한 존중과 보호는 아주 지대한 영향을 미칠 권리였다. 보호받지 못한 창작은 심리적인 상처가 먼저 제일 크게 다가오고 아마 전문적인 작가였으면 인정받지 못한 법적 권리로 인해 타격이 컸을 것이다. 저작권은 법적이든 도덕적이든 심리적이든 창작에 대한 존중이 가장 기본적인 저작권임을 되새기게 되는 나의 흑역사이다.


모방으로 시작하는 것이 창작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전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창작은 불가하다. 신이 아닌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앞서 나온 작품들을 보고 배우며 모방을 하다가 자기 자신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작이다. 이것이 그 한 사람만의 고유한 것이라는 것이 공증될 때 저작권이 보장된다. 가끔 모방과 창작의 한계가 뒤엉켜 애매모호해질 때가 많다. 그것을 좀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해 저작권이라는 법이 생긴 것이다. 저작권법으로 하여 최소한 창작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 다 같아 보여도 막상 현실에서 하나하나 부딪히면 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령 같은 사물을 놓고 그림을 그려보라 하면 다들 각자만의 선과 색으로 모양을 다르게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창작이다. 이것이 전문적인 작가로 이어질 때 저자 고유 권한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그 사람만의 가치이고 노력이니 그에 상응한 대가는 그에게만 소속된다고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저작권의 기본이다.


한마디로 모방은 하되 거기서 머물지 않고 자신의 것을 찾아내는 것이 저작권을 인정받고 지킬 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작품을 보면 흉내 내고 싶어지는 것이 인간의 심리이다. 그러다 그 작가가 그랬듯이 그도 자신의 것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창작물을 다양하게 보호해 주는 것이 저작권이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리고 그 시의 내용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그 아이는 저작권 있는 저작자가 되어있을 것 같다. 창작의 기쁨은 한 번 맛보면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는 회복되어 창작의 맛을 다시 맛보지 않을까. 상처를 보듬어 안아 줄 세월이 흘렀으니 창작을 시도해 그 행복을 맛보고 싶다. 물론 이젠 모방과 창작을 구분할 줄 알고 저작권도 잘 보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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