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숲
초저녁부터 일찍 잠이 드니 일찍 일어나게 된다. 아마도 아침형 인간이라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해 뜨면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자동적으로 일찍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면서 가진 인자인지 만들어진 아침형인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출퇴근 시간에 길들여져 연휴에도 매번 그 시간에 눈이 떠지듯이 몸이 후천적으로 적응한 아침형일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가서 눈을 뜨니 다음날 오늘 새벽 5시이다. 물론 중간에 두어 번 깨기는 했지만 잠결이라 일어났다 할 수는 없다. 눈을 뜨니 제일 먼저 열린 창문으로 산뜻한 바람과 함께 새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온다. 잘 들어보니 물까치의 울음소리이다. ‘가가가각’ 하고 운다. 목구멍을 조금 긁어내듯 울리는 소리이다. 자태는 고운데 목소리는 좀 거칠다고 할까. 자주 들으니 그것도 나름 괜찮다.
그렇게 한참을 울더니 뒤이어 ‘뛰리리뛱뚝’ 명랑하게 울리는 새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개똥지빠귀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름은 좀 개똥이 들어가 좀 뭣한데 소리하나는 소프라노처럼 높고 청량하다. 가만히 누워서 귀를 기울이니 ‘짹짹짹’ 하는 참새 소리도 들린다. 어제는 이 시간에 까마귀가 “깍깍각” 중성 톤으로 울었는데. 그 전전날은 개똥지빠귀가 은방울 굴러가는 소리로 명랑하게 울었고. 혹 매일 주가 되는 새가 돌아가며 정해져 있는 것일까.
여기저기 새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날도 있다. 분명 도심의 빌딩숲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여기가 숲 속인가 공원인가 싶을 때가 있다. 이른 아침 새벽이라 그런지 새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가끔 자동차 소리도 나지만 층이 높아서인지 자동차 엔진소리는 바닥에 깔리듯 흘러가버린다. 좀 더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일어나서 활동하는 시간이 되면 새들이 어디로 다 날아갔나 싶게 사람소리만 들린다.
새벽녘에 보이던 달이 해가 뜨면 제자리에 있어도 강한 햇빛 때문에 보이지 않듯 아마도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귀 기울여 듣지 못할 뿐 어딘가에서 새들은 지저귀고 날아다니고 있다. 새는 숲 속이나 나무 많은 곳에서만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항상 우리 사람들 가까이에 있다.
창밖으로 무심히 바라보면 건물들 사이사이 곳곳에서 새들은 쉬어가기도 하고 날아가기도 하며 무언가를 하며 지저귀고 있다. 도심이든 숲이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생명체는 공존하고 있다. 주로 숲에만 살던 새들이 건물들 사이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처음 지방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 도심에서 살아갈 때 공기부터 텁텁하고 답답했는데 몇십 년이 흐른 지금은 그냥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러워졌다. 시골은 여행이나 가서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바뀌었다. 건물숲 속에 도심이 나의 주거처가 된 것이다. 새들도 그렇게 적응한 것이 아닐까.
조금 더 나가면 공원도 있고 건물 사이사이 나무도 종종 있어 우리 사람들이나 새들에게 참 다행이다. 평소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평소 관심을 가지지 못해 보지 못하였던 새들이었나 보다.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띄고 새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내가 한가한 것이 맞는구나 싶다.
숲에 가서야 관심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숲에만 새들이 있다고 무심히 생각해 왔다. 그러보보니 이 무심함이 참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 일찍 잠에 깨면 일어나기 전에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 여유롭게 새들의 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수 있어 잠깐이나마 행복하다.
마치 어렸을 적 시골집에서의 풍경처럼 느껴져 더 좋다. 일어나기는 싫은데, 더 자고 싶은데 부모님의 깨우는 잔소리보다 노래하는 새소리가 듣기 좋아 일어났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이 도심의 건물들을 나무들처럼 자연이라 할 수 있을까. 사람과 새들이 그리고 다른 생명체들이 살고 있으니 자연이라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