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달리기
비 온 뒤 촉촉한 날의 달리기
산책객도 드물다.
덕분에 마스크 프리존이 길어져서 숨쉬기도 편안.
물기 머금은 풀냄새가 향긋한 밤이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급히 때려 넣은 커피가
저녁까지 여운을 남겨 속이 별로다.
오늘따라 퇴근길 지하철도 북적거려서
한 시간 넘는 길을 내내 서서 왔다.
하아. 지친다. 직주근접 근로자들, 부럽다.
힘든데 오늘은 달리기를 쉴까.
마침 걸려온 친구 전화
요즘 공황발작이 생겨 정신과를 다닌단다.
스트레스 쉽게 받는 성격에
그걸 빵 같은 밀가루 먹기로 풀어대더니만…
“야, 그거 약 먹어서 나을 생각 말고
밀가루 줄이고 운동을 해.
퇴근하면 나가서 삼십 분이라도 걸으란 말야.”
“알아 알아. 누가 몰라서 그러냐?”
전화를 끊고 나니 뛰어야겠단 생각이 마구 든다.
누가 누굴 가르치려드나.
내 몸뚱이 하나도 제어하기 힘든 사람이 나인데.
운동하라고 권하려면 나부터 해야지.
좀 힘들긴 했지만
역시나 뛰면 뛰어진다.
오 킬로라는 거리가
아직은 좀 길게 느껴지긴 해도
그래도 뛰는 것보다 걷는 걸 많이 했던
처음에 비하면…
눈물 나게 성장한 거다.
그래그래. 오늘도 잘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