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벙커에서…
건우와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었다.
늘 조용함을 요구하는 전시장은
우리에게 너무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제주에 있는 ‘빛의 벙커’ 전시장에 대해
보았을 때,
‘건우와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진 몰입형 전시,
조용히 감상하는 대신
그 안을 걸어 다니며 마음껏
보고, 듣고, 움직일 수 있는 곳.
그 공간이 우리에게는 새로운 문처럼 느껴졌다.
이 날 일정은 아이들보다
내 욕심이 조금 더해진 일정이었다.
제주의 ‘이왈종 중도의 섬’ 전시장,
그리고 샤갈의 작품이 함께하는 빛의 벙커.
작품이 벽과 천장, 바닥을 가득 채우는 공간에서
우리는 조심스레 걸음을 디뎠다.
건우가 큰 소리를 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전시장 안은 음악이 크게 울려 퍼져
건우의 소리도 자연스럽게 그 안에 스며들었다.
나는 벽에 흐르는 찬란한 색들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현실은 건우를 따라다니고 찾느라
눈을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넓고 탁 트인 공간 덕분에
앉았다 걷고, 다시 앉기를 반복하며
우리는 그곳에서 충분히 머물 수 있었다.
건우는 여전히 구석진 바닥에
엎드려 침을 바르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은 나와 함께 의자에 앉아
빛으로 흘러가는 작품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은 없지만, 그 순간
건우도 뭔가를 보고,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둘째와 셋째는 벽에서 피어나는
동백꽃에 감탄하고
제주의 풍경에 놀라고
그림자처럼 이리저리 다니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전시를 즐겼다.
우리만의 공간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으로 나아가는 일은
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용기를 내어 함께 걸어보니
이렇게나 소중한 기억이 남았다.
건우가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하루가 된다.
조용한 미술관이 아니어도 괜찮다.
장애가 있어도,
표현이 서툴러도,
예술 앞에서는 누구든
그 나름의 감정으로 머물 수 있으니까.
나는 오늘도 바란다.
건우가 이 세상을
한 조각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