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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Apr 05. 2022

유투브에 출연했습니다

내 얼굴에 킹받는 중

내가 저렇게 생겼구나. 표정 참 더럽네. 턱은 왜 자꾸 쳐드는거야. 목소리는 어둡고 말투는 건방지네. 모르면서 아는 척은.


이렇게 아내에게 톡을 보냈다. 아내는 그게 바로 너라며 받아들이라고 한다. 셀카 세대가 아닌 나는, 내 얼굴을 화면으로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녹음은 경찰이 수사할 때나 하는 거 아닌가. 당연히 내 목소리도 20분 넘게 들을 일이 살면서 없었다. 이제 보니 인생 참 곱게 살았단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유투브 채널 중 <친절한대학>이란 곳에서 작가 인터뷰 요청이 왔다고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을 보낸 사람은 첫 책을 내주신 출판사 사장님. <친절한대학>의 구독자는 77만명이다. 굉장히 많은 편이라고 한다. 구독자는 55세에서 65세가 대부분이고, 그 분들께 영어를 아주 쉽게 가르치는 내용이다. 이지쌤은 창업자이자 젊고 재치있는 CEO이다. 이지쌤에 대한 구독자들의 감사 인사는 거의 우리 부모님께서 학교 선생님들께 하셨던 그 이상이다. 그야말로 충성 구독자들이다. <친절한대학B>는 비슷한 연령대의 분들께 시사, 상식, 인문, 교양 등을 전달하는 유투브 채널로, 구독자는 약 30만명. 내 인터뷰는 <친절한대학B>에 실렸다.


<철학하는 50대는 미래가 두렵지 않다>는  2020.8.1 나왔다. 이번 작가 인터뷰는 출판 20개월만에 책 제목때문에 뭔가 만들어진 첫 사례다. 나는 책 제목에 50대를 박아 넣어 이런 저런 놀림을 받아더랬다. 50대가 아닌 40대 지인들이 자신들은 읽지 않겠다고 농담반 진담반 했던 것이다. 출판사 사장님은 출판업계에 50대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며  철학하는 50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제목 탓이든, 작가가 후진 탓이든, 코로나 탓이든 어쨌든 책은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친절한대학 운영자는 50대와 철학을 키워드로 검색했고, 내 책이 딱 걸렸단다. 채널 구독자층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이제 책 제목에 대한 나쁜 기억은 뒤로 하고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내 책 탓이든, 코로나 탓이든 출판사는 아직도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한 권이라도 더 팔릴 수 있다면 응당 인터뷰를 해야 하고, 그것도 이왕이면 잘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연습에 돌입 했다.


아내가 이지쌤 대역을 맡아 주었다. 아내는 사전 인터뷰 질문지를 재미있게 읽었다. 당장 유투버가 돼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잘했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나였다. 지가 쓴 책 내용을 묻는 건데도 버벅거렸다.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지만, 철학에 대해 뭔가 말해 달라고 하면 앞이 깜깜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수업 시간에 그렇게 퍼 자더니만.


새벽에 잠도 설치고, 질문지도 다 외우지 못한 상태에서 <친절한대학>을 찾았다. 스튜디오는 홍대 근처 멋진 건물에 있었다. 직원도 3명이나 있고 사무실도 세련되고 번듯했다. 요즘 유투버들은 작은 골방에서 먹방만 하는 줄 알았는데, <친절한대학>은 잘 준비된 콘텐츠 회사처럼 느껴졌다.


자연스럽게만 하시면 됩니다란 말을 한 열번 쯤 들었다. 자연스럽게 하란 말이 이토록 부자연스러울 줄이야. 편하게 하세요란 말은 한 스무번 쯤 들었다. 편하게 하란 말이 이로톡 불편할 줄이야. 결정적으로 이지쌤은 나에게만은 난해쌤이었다. 왜 미리 준 질문지대로 하지 않는가 말이다!!!


어찌어찌 인터뷰는 끝났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내용은 포기했다. 그런데 오늘 유투브에 올라온 영상을 보니 비쥬얼도 볼품 없다. 망했다.


인터뷰는 망했지만, 큰 걸 배웠다. 이지쌤은 교육의 기회를 놓치신 분들이 영어를 정말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양과 시사 상식도 그렇다. 누군가는, 저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싶을 정도로 쉬운 것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분들에겐 태어나 처음 듣는 말이면서 게다가 그 어려운 영어로 된 말이다. 그 분들껜 친철하고 실력있는 번역가가 필요했고, 이지쌤은 그 필요를 아주 잘 채워주고 있었다.


배움에는 나이도 없고 왕도도 없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뭘 배웠고, 뭘 나눌 수 있을까. 그동안 나는 배우고 나누는데 너무 고정된 틀에 얽매어 있진 않았나. 돌아오는 길에 깊이 반성했다. 세상엔 참 훌륭한 분들이 많다.


이런 생각 끝에 용기를 내서 유투브 링크 올립니다.

사실 실물이 조금 낫습니다.

안구 건강이 좋지 않으신 분들은 시청을 자제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youtu.be/vpKhg27EW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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