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의 동티모르 시절 이야기]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들은 제 핸드폰 or 드라이브에 담긴 사진의 순서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처음 동티모르로 떠났던 게 2016년이니 기억들이 많이 미화됐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지난 사진들을 보고 당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걸 보니 여전히 저한테는 특별한 기억들인가 봐요.
앞으로 전할 이야기들도 재밌게 봐주세요:-)
로스팔로스에서 고기가 먹고 싶을 땐, 주말에 시장에서 막 잡은 고기를 사서 먹을 수 있었다.
로스팔로스에서 살 동안 두번 정도 시장에서 막 잡은 소고기를 사먹은 적이 있었는데, 한 날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서 새벽부터 시장에 갔었다.
고기를 부위별로 파는게 아니다보니 인터넷에서 스테이크용 부위가 어디인지를 찾아보고 소를 잡을 때부터 옆에서 기다렸다가 원하는 부위를 샀던 기억이 있다.
막 잡은 고기라 숙성을 오랫동안 해야된다고 해서 2주 넘게 숙성을 해서 먹었는데도, 이가 나갈 정도로 질겼던 기억이 있다.
어느덧 동네에서 에마 꼬레아(ema Koreia 한국사람) 헌트라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해서 동네 아이들이 주말이면 몰려 들었다.
그래도 아이들 덕분에 테툼어가 굉장히 빨리 늘 수 있어서 좋았다.
배 불뚝이 멍구가 출산을 했다. 처음 멍구가 임신을 했을 때는 언제 애기가 나오나 노심초사 했던 기억들이 있는데, 믿어지지 않겠지만, 2년차가 됐을 때는 멍구의 행동만 보고도 '아 오늘이구나' 싶어서 집 안에 들여다놓으면 출산을 하는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이 작은 몸으로 늘 3~4마리씩 새끼를 낳았었는데, 매번 4달 간격으로 출산하는게 힘들어보여서 나중에는 일부러 최대한 새끼들을 오랫동안 키웠다가 분양을 보내곤 했었다.
큰 자전거를 타본 적 없는 로모가 자전거를 배우고 싶어해서 퇴근 후에 며칠 동안 자전거를 가르쳤다.
역시나 애기들은 전세계 어디나 똑같듯이 하나 끝나고 나니 하나 줄 서고, 줄줄이 자전거 교습소를 운영해야했다.
꼬물이들은 2주 정도는 눈을 못 뜨기 때문에 최대한 어두운 곳에서 잘 보살펴야했다. 그래서 저녁에만 잠깐 구경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 동네 꼬마들은 도서관이 제 집 안방이 되었다. 그래도 애기들이 와서 책도 읽고 하면 좋은 일이니까 오히려 좋았다.
출산 후 한결 몸이 가벼워진 멍구는 살 맛 난다는 듯이 육아는 하지 않고 바깥으로 돌아다녔다.
애기들 밥 좀 주라고 집 안에 두면 나가겠다고 하도 소리를 질러서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시장에서 사온 고기를 열심히 구워주었는데, 비주얼을 보니 실패했었던 거 같은 기억이 난다.
이때 쯤부터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아 나섰는데, 자주 구경 갔던 곳이 닭싸움장이었다.
이상하게 늘 퇴근 때마다 아저씨며 젊은이이며 할 것 없이 닭 한마리씩을 안고 어딘가로 가는 모습을 보고 수상히 여겨 따라가봤더니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닭싸움 구경을 하는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배팅도 하고 하길래 신기해서 같이 일하던 C간사님도 보여드리고 싶어서 모시고 갔더니 일종의 금녀 구역이였다.
그래서 간사님을 후드로 뒤집어 쓰게 위장을 시킨 후에 멀리서 같이 구경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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