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그래도 두 달에 한 번은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글이 작년이 되어버렸다. 역시 글도 다른 여느 행동과 마찬가지로 시간 날 때 쓰는 것이 아닌 시간을 내서 써야 하는 것인가 보다. 오히려 시간이 날 땐 잊고 살다가 꼭 지금처럼 할 일이 많을 때 생각이 많아져 쓰고 싶어지는 아이러니다. 오늘도 공부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정리해보려 한다.
인간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살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살면서 마주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수를 떠올려보면 아마 셀 수 없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도 여럿 만나보아야 이 사람이 나에게 맞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개의 성격이 있듯이, 사람은 각자의 성격이 다르다. 하물며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혈육과도 이렇게 다른데,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
20살 때 나는 일주일에 6일 이상 집 밖에 나갔다. MBTI검사를 하면 E가 94%가 나올 정도로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하는 걸 즐겼다. 20살 때 내가 만났던 사람의 폭은 매우 넓고 다양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연한 만남이 단순히 한 번에서의 만남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반복되기까지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매우 큰 조건이 하나 필요했던 것 같다.
결이 맞는 사람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 말에 꽤나 회의적이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그 마음은 크게 변함이 없다. 어른들이 소위 말하는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인간관계에 바운더리를 만들어서 선을 그어버리는 거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결'이 무엇일까. 한 단어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20살의 나와 지금의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점점 알게 되었고, 내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나 자신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으며, 내가 어떤 사람과 함께했을 때 그 시간이 행복한지, 내가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부합하는 사람이 바로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이 아닐까. 이는 단순히 사과라는 과일을 보고 저게 '사과'인지 'apple'인지, 사물을 처음 보았을 때 '맛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아니면 '빨갛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지를 말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인 것에 마음과 생각이 비슷한 게 아닌, 옳고 그르다는 도덕적 판단의 결이 비슷한 사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꾸밈없이 보여줘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
6개월에 한 번, 1년에 한 번 만나더라도 마치 어제 만난 것 같은 사람
함께한 시간에 대해 옛 추억을 공유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
때로는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사람
슬픈 일에 함께 울고 기쁜 일에 함께 웃어주는 사람
......
결이 맞는 사람에 대한 해석을 쓰다 보면 밤을 꼬박 새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결이 맞는 사람에 대한 몇 가지 정의를 내려보니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 본받고 싶은 사람의 정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늘 결이 맞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 게 인생이지만,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 나와 비슷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일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방문객>으로 이 글을 마치겠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