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모든 아이들이 사랑받길 바라며
모든 아이들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지난 2일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선 16개월의 아기 정인이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을 다루었다. 웃는 것이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복숭아를 닮은 아이 정인이는 입양된 지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인이는 양부모의 학대로 인해 성인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에 떨어 그 아픔조차 표현하지 못했다. 다 큰 어른도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는 법인데, 고작 16개월짜리 아이가 아프다고 눈물 한 번, 짜증 한 번 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먼 길을 떠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정인이의 사건을 다룬다는 예고편을 보고 방송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본방을 못 보고 어제 새벽 모두가 잠든 밤
재방송을 찾아보며 베개에 머리를 대고 소리 죽여 울었다.
나는 2019년부터 홀트 아동복지회에 주 1회 입양 대기 아동을 돌봐주는 봉사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입양을 기다리는 아기들이 놀이방처럼 찾는 곳이다.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을 품에 안았고 수많은 아기들을 새로운 가정으로 떠나보냈다. 물론 아기를 돌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분리불안 때문에 위탁어머니와 잠시라도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여 울 때까지 토하는 아기도 있었고, 한 명이 울면 옆에 아기들도 따라 우는데 아기 9명에 봉사자 2명이라 양손에 아기 둘을 안고도 손이 모자란 적도 있었다. 몸은 힘들어도 복지관에 있는 3시간이 일주일 중에 가장 손꼽아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의 미소를 보면 일주일간 힘들었던 피로가 싹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짧게는 3,4개월 길게는 2년 정도 머물다가 새로운 가정으로 입양을 가게 된다. 난 아직도 민규와의 이별을 잊을 수 없다. 고작 4살밖에 안된 남자아이였다. 위탁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 놀이방에 들어오지 않으려고 했던 아이가 마치 본인이 입양 간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입양 가기 2주 전부터는 위탁 어머니와 떨어져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혼자서도 잘 놀았다. 마지막 날에는 민규를 꼭 안아주며 미국에 가서도 잘 지내라고 말하니 맨날 우는 얼굴만 보여주던 민규가 큰 미소를 지으며 애교도 부렸다. 이제 겨우 3살을 넘긴 아이가 마치 이별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 법도 한데 되려 씩씩해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더 아팠다.
홀트에서 안아주던 아이들이 생각나서 정인이를 보고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정인이도 민규처럼 씩씩하게 위탁어머니의 품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을 것이다. 비록 낳아준 부모는 곁에 없어도 새로운 가정에서 아빠, 엄마, 언니에게 사랑받을 것을 기대하며 정인이의 두 번째 인생은 시작되었지만 271일 만에 끝이 났다.
정인이가 외롭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 3번의 기회가 있었다. 정인이를 학대로부터 구해줄 3번의 기회가 말이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외면했다. 도대체 뭐가 그리 바빴는지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도 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입양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이다', '수면교육의 일환이다', '오다리를 교정하기 위해서다', '원래 아토피가 심했다' 등의 양부모 말을 믿고 아동학대혐의 신고는 3번이나 무혐의로 결론지어졌다. 정인이가 사망한 날 담당 응급의는 이 정도면 "교과서에 실릴 수준의 아동학대"라고 주장했다. 과연 경찰 중 한 명이라도 신고를 받고 제대로 수사를 했더라면 16개월의 아기가 싸늘한 주검으로 세상과 이별하진 않았을 것이다.
양모는 아동학대치사, 상습 아동학대, 양부는 아동학대, 아동 유기 및 방임 혐의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아동학대치사죄는 대법원 양형기준상 최대 15년의 징역형 밖에 받지 못한다. 3차례의 신고를 무혐의 처분을 내린 담당 경찰관도 징계위에 회부되고 주의와 경고 처분이 끝이라고 한다. 한 아이의 목숨 값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