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빈나 Jan 27. 2021

캐나다 어린이집, 환상과 현실 그 사이 - 9

영하20도에도 바깥놀이를 한다

내가 캐나다에서 지냈던 곳은 캐나다 서부에 있던 주로, 겨울이 8개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겨울이 길고 강했다. 봄이 와야하는 3월에도 눈이 쏟아지는 것은 기본이고, 10월 1일부터 폭설이 내리기도 했으니, 햇빛이 내리쬐는 6,7,8월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산책도 잘 안다니던 게으른 나였는데, 6~9월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자전거도 하고, 혼자 달리기도 하고, 동네를 몇 시간동안 걸어다니면서 날씨를 만끽하기도 했다.


나는 추위를 그다지 많이 타는 편이 아니라서, 한국에서 "와 얼어 죽겠다!"라고 느낀 순간들을 거의 없었으나,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겨울들을 정말이지 살을 에는 듯한 그 고통에 길거리에 서서 허벅지를 주먹으로 몇번씩이나 내리쳤었다. 영하 10도는 기본이고, 체감온도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그곳에서 차 없이 지내기란 정말 보통 정신력과 고집으로는 버티기 어려웠다. 여기에서 내가 '고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늘이 "야,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너 진짜 차 안사? 그래? 그럼 더 당해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추위를 휘몰아치는데도 차를 안사고 버텼으니 말이다. 나는 뭐, 사고 싶어도 당시에 면허가 없었으니 못 샀지만.. 캐나다에서 산지 3년차가 되었을 때는 무릎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고 출근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캐나다에서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에 친구와 함께 오랜만에 멋을 부리고 다운타운에 놀러를 갔는데, 그 날 체감온도가 영하 35도였다. 친구와 나는 잠깐 밖에 나오고는 "뭐야 영하 35도 괜찮은데?"라고 말하며 겁도 없이 코트와 치마를 입었다. 친구와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순간적으로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서 "지금 다리에 느낌 있어?" 라고 물어보고는 그 자리에 서서 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세게 다리를 내리치는대도 감각이 쉽게 느껴지지 않아서 아찔했다. 나중에는 이런 추위에도 익숙해져서, 영하 20도는 "오 오늘 날씨 좋네"라고 느끼면서 혼자 산책을 다니기도 했다. 한 때 동네 초밥집에 미쳐서 매주 일요일마자 무장을 하고 15분씩 걸어가서 먹었던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보통 그깟 초밥이 뭐라고 그 추위를 뚫고 가서 먹었는지.. 참 나 스스로가 미련하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아무튼, 겨울에는 눈이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그러다보면 간혹 집에 고립되어 출근을 하지 못하는 교사나 등원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는 운이 좋게(?) 폭설이 내린 다음 날에도 현관문이 잘 열렸으나, 종종 현관문이 얼어서 혹은 눈이 문을 가로막아서 나오지 못하는 교사들이 발생한다. 운 좋게 집에서 빠져 나온다하더라도 차가 길거리에서 뺑뺑 돌아버리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출근을 못하는 일은 말할 것도 없다. 눈이 많이 온 날에는 데이케어 뿐만 아니라 온 동네가 난리가 나는데, 가장 큰 재난(?)을 겪었을 때는 온 동네가 정전이 되었던 적이 있다. 폭설로 인해서 전깃줄이 무너져 내렸고, 그로 인해 온 동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오전 7시에 출근했을 때 데이케어는 멀쩡했으나, 이미 동네에 서서히 정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전 9시쯤 되었을 때 데이케어도 정전이 되었고, 출근한 교사들은 자기네 집에 어제밤부터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다운타운에 있는 팀홀튼(우리나라로 치면 24시간운영하는 던킨도너츠)에 사람들이 밥 먹으러 몰려서 난리가 났다 등 그 재난상황을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전은 너무나도 흔한 상황이기 때문에 정전이 됐다고 해서 바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는 것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온 동네 정전이 되었지만 팀홀튼에는 전기가 들어왔던건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몰려 도로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발생된 것이다.


오전에 교사들이 출근하지 못할 경우에는 디렉터가 직접 데리러 가기도 했다. 집에 갇혀 있는 교사를 꺼내서(?) 다시 출근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너무나 웃겼다. 그렇게 디렉터가 한 동네를 쭉 돌고오면 그 차에 4-5명의 교사들이 실려서(?) 출근을 하곤 했다. 그렇게 폭설이 내린 날에는 아이들도 등원을 많이 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뚫고 오는 아이들이 있었다. 이런 재난 상황에서 부모가 일을 수습해야 하는 직업을 가졌을 경우에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날에는 난 적게 등원한 아이들과 옹기종기 앉아서 놀이를 하다가 "우리 눈 놀이 하러 갈래?"하고 같이 나가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하루에 1시간 이상 바깥놀이를 해야하는데 이렇게 강추위에도 예외는 없다. 물론, 게으른 우리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온가 핑계를 대며 겨울에는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지만, 원래는 영하 18도까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가물가물..) 의무적으로 하루 1시간 이상 바깥놀이를 해야한다.


애들은 바깥놀이를 나가는 것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스키복, 스키장갑, 스키부츠를 신겨주고 함께 나가면 추위를 잊은 채 그 짧고 오동통한 다리로 열심히 걸어다니면서 바쁘게 논다. 겨울에는 챙겨 입혀야 하는 것도 많기 때문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기다리게 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명 스키복을 입혀놓으면, 다른 애는 지금 당장 나가겠다며 문을 열고 있고, 그 애를 진정시켜서 앉혀놓으면 다른 애는 자기 모자가 없어졌다고 울고, 모자를 찾아주면 다른 애는 왜 자기를 도와주지 않냐며 울고.. 그렇게 열심히 사투를 하고 나면, 밖에 나가기도 전에 진이 쭉 빠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눈 위에서도 데굴데굴 구르고, 눈 위에 눕고, 참 더럽게(?) 노는 걸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쉽게 그러지 못했다. 우선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내가 일했던 데이케어에서는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는 부모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옷을 더럽히면서 놀 경우, 집에서 세탁을 해주지 않고 다음날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오는 경우가 많았기 떄문이다. 하물며 진흙탕에 빠졌어도 그 다음날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왔으니.. 나로서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런 놀이를 자제하는 편이었다.


눈이 내린 직후는 괜찮으나, 며칠이 지나면 스케이트장처럼 눈이 얼어붙는데 그럴 때는 애들이 서로 경주라도 하듯이 너나 할 것이 없이 넘어지기 시작한다. 천만 다행으로 아이들이 몸을 충분히 보호해주는 스키복을 입고, 머플러로 얼굴을 꽁꽁 감쌌기 때문에 다치지는 않았으나,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넘어지면 일으켜줘야하기 때문에 나도 엉긍엉금 기어가서 아이들을 구해주곤(?) 했다. 나도 넘어지면 "나 도와줘!"라고 외치면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와서 나를 일으켜준다. (물론 나를 일으키다가 내 무게에 못 이겨서 본인들이 넘어지곤 하지만) 그렇게 우리끼리 낄낄 거리면서 놀다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면 마치 그 추위가 전부 풀리고 몸이 노곤노곤해져서 아이들은 자기 침대에 눕자마자 꿀잠을 자기 시작했다. 나도 아이들을 재우고 빈 교실에서 선생님들과 커피 한잔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몸이 나른해져서 잠이 쏟아지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창 밖을 바라보며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또 겨울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직업을 하다보면, 1월 1일이 다가와도 새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모든 학기가 다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될 때 비로소 "새해가 왔구나"라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추운 겨울이 다 지나가고 봄이 와야 새해가 온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새해 첫날, 1월 1일은 3월 1일이나 다름이 없다. 나의 새로운 1년을 시작하는 해. 쏟아지는 눈을 보고 있으면 올 한 해도 이렇게 지나갔구나, 올 한 해도 무탈하게 지나갔구나 라는 안도감이 들면서, 폭설이 내려도 그 상황이 즐겁게 느껴지곤 했다. 특히 타국에서 맞이하는 겨울은 나 혼자서 버틴 모든 순간들에 대한 뿌듯함과 대견함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쏟아지는 눈 속에서도 나는 잘 버티고 있구나, 이렇게 추운 곳에서도 나는 따뜻하게 지내고 있구나 라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문득문득 그리워지는 그 겨울 냄새와 풍경, 새벽에 출근하려고 문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한기, 속눈썹까지 얼려버리는 추위, 아무도 밟지 않아서 새하얗고 다이아몬드처럼 느껴지던 도로 위의 눈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밟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던 그 순간들.


캐나다에서 만난 '겨울'과 '눈'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춥지 않았다. 나를 웃음짓게 했다. 눈이 오면 설레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도로 위의 더러움과 뭉쳐 쌔까맣게 변해버린 눈이 아닌 만지기도 조심스러울 정도로 깨끗하고 반짝였던 그 모든 눈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나에게 캐나다의 겨울이란 그런 존재였다. 너무나도 길고 강했지만, 그 만큼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으며,

너무나도 추웠지만 내 마음은 그 어떤때보다 따뜻했다. 나는 춥지 않았다. 나는 행복했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 어린이집, 환상과 현실 그 사이 - 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