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시간에 한 줄이라도 더
글을 실컷 써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 읽어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읽을 만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더군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이 집중해야 합니다.
값비싼 화장품의 초미니 샘플을 온 힘으로 눌러 짜내듯 해야 글 한 편이 나와요. 수십 번 고쳐 짜고 다시 짜고 돌려 짠 후에 으헉! 하면서 발행을 합니다. 그리고 나면 개운할 거라는 기대와 달리, 발행 전보다 몸이 더 꼬여오지요. 수많은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작가도 아니면서 마음이 어려워요. 글에 대한 모든 반응이 궁금한 동시에 겁납니다 (그중에 제일 큰 고통은 무반응이라. 껄껄). ‘이게 뭐냐’ 비웃는 소리도 없는데, 안절부절 입맛까지 없어요.
이렇게 힘든 걸 쉼 없이 하는 분들 - 그러니까 브런치에 줄기차게 업로드하시는 그런 분들 - 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체 글 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 걸까, 역시 '즐기는 자'가 진정한 고수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직장 다니면서 글 쓰시는 분들, 보약이라도 지어 드시는 건가요? 그 열심과 꾸준함이 아름답습니다.
잠시 쓰다 오래 쉬기를 반복했더니, 구독자 수는 둘째치고 '조회 수'가 아주 귀엽게 되었습니다. 힘들게 써 올려도 읽는 사람이 적어요. 브런치 초보 시절에는 이런 분위기를 무릅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조금 초월이 됩니다 (분명히 '조금'이라고 했음). 몇 분만 읽어주셔도 힘이 납니다. 여기서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브런치 고인물이 된 기분이군요. 존재감 없는 고인 물.. 껄껄..
한참 예민하던 중고등학생 시절, 일기를 쓰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 독자를 가정하게 되곤 했어요. 나만 보는 건데도,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글을 못 쓰겠는 거예요. 내 속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싶은데, 왜 그게 안 되는지. 가슴이 뻥 뚫리는 속풀이를 한 번도 못 해봤어요 (아마도 ‘일기장 검사’의 폐해가 아닐지).
글을 계속 쓰고 더 쓰고 싶습니다. 겉멋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는 글을 신나게 쓰고 싶어요. 하지만 ‘묻지 마 일기’를 쓰지 못했듯이, 여전히 글 한 편에 수많은 생각이 달라붙습니다. 이래도 될까 저래도 될까. 대체 누구의 무엇을 염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쓰고 싶은 글과 써지는 글의 간격을 좁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나도 모르겠다’ 낮아진 마음으로 써 내려가는 때가 있는데, 썩 마음에 드는 한 편이 나오기도 했어요. 그리고 나면 그다음 글에는 영락없이 힘이 잔뜩 들어가 버리고요. 아오 정말. 아무튼 막힘없이 쓴 글이 막힘없이 읽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글을 쓰면서 위안을 얻고 싶어 시작했는데, 엉뚱하게도 부담이 자꾸 커져요. 어째서 시원하게 써지질 않는 걸까. 독서 부족, 실력 부족, 열정 부족.. 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런 상태에서 ‘괜찮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게 가장 문제가 아닐까..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실력에 비해 욕심이 과한 거죠. 껄껄. 선생님들, 선배님들은 '많이 읽고 쓰라!'라고 조언하시더군요. 그게 맞을 겁니다. 조상님들의 지혜는 언제나 진리에 가까운 법이잖아요.
몇 가지 고충과 핑계에 얽매어 마음과 달리 글을 뻥뻥 찍어내지 못했습니다. 글로 쓰고 싶은 말이 머리속에 꽉 차 있는 기분일 때도, 쉽게 자판에 손이 올라가질 않았어요. 사실 저의 진짜 고민은 '어떻게 쓸까' 나 '왜 안 써질까'가 아니라, '나는 꼭 글을 써야 하는가?' 거든요.
요즘 책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더 늦기 전에 덤벼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주 신나는 기분으로 시작했고 생각보다 잘 써집니다 (목표한 원고량의 반을 좀 넘겼을 뿐이니, 저 지금 까부는 거 맞습니다). 책 한 권을 완성해서 투고를 해보려고 해요.
재능과 소신을 결합해 가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아주 재밌어요. 브런치에 올렸던 글도 몇 편 가져다 넣었습니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꼭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어요.
마침 홈스쿨링 여름방학이거든요. 틈나는 대로 노트북 앞에 앉습니다. 아이들이 궁금해서 자꾸 얼쩡거려요. 그게 너무 웃깁니다. 글 쓰면서 재밌고 읽으면서 재밌습니다.
오겡끼데스까.. 글친님들도 잘 지내고 계시겠죠? 생사 여부는 '조회 수'로 확인하겠습니다. 기다리던 계절이 오고 있어요.. 건강하십시오.
단결. 충성.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