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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Dec 05. 2022

사모가 된 소감

실망을 피하고 싶었어



남편은 중, 고등부를 맡아 사역하는 강도사였습니다. 주일에는 아침 일찍 교회에 갔고 온종일 너무 바쁘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결혼을 했지만 어른 예배(?)는 드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청년부 예배 시간에 맞춰 주일 오후에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에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예배 마치면 주차장이나 근처 카페에서 남편의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가끔씩 내가 새 신자인 줄 알고 말을 걸어오실 땐, 참 난처했어요. “저는 누구누구 아내입니다.” 말하는 게 부끄럽고 쑥스러웠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예배 직전에 교회에 들어가서 끝나자마자 튀어나왔어요. 2년 정도 투명인간처럼 교회에 다녔습니다.      


첫 아이 출산하고, 자모실로 들어갑니다. 남편은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숨어 다닐 수가 없게 됐어요. 다른 사모님들은 서로 친하게 지내는데, 나는 어색해서 인사만 나누었습니다. 여전히 교회에서 남편을 만날 수가 없었어요. 여전도회 모임에 가는 게 제일 어려웠습니다. 또래가 비슷한 집사님들, 사모님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예배하고 회의하고 나눔도 하는 모임입니다.      


한날의 주제는 Q.T. 였습니다. 예민한 아기 돌보느라 한참 잠이 부족했던 시기였어요. 성경책 펼칠 겨를도 없는데, Q.T. 라니.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막막했어요. 집사님 몇 분이 나눔을 하시는데 너무 듣기가 좋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은혜를 고백하는 모습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나는 흉내도 못 낼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저는 사모지만, 집사님들처럼 못 해요. 말씀도 잘 못 읽고, 하나님 은혜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나누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참 좋고 은혜가 됩니다. 저도 더 열심히 신앙생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수와 함께 다음 분 순서로 넘어갔습니다.     


그다음 달, 여전도회 모임 시간이 또 돌아왔습니다. 우리 팀에는 나 말고 다른 부교역자 사모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말하실 차례가 되었어요. 그날의 주제는 생각나지 않지만, 그분이 했던 말은 잊히질 않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쨈사모님이 하시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서 가슴이 뛰었어요. “저는 사모니까 교회에서 항상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했거든요. 근데 하사모님이 자신은 집사님들보다 못하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솔직한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굳이 사모라는 틀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거였어요.“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던 것뿐이었는데, 그게 잘 한 말이었다니. 어설픈 사모가 수면부족 상태에서 주절거린 소리를 ‘좋았다’ 얘기해주신 그 사모님이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계속 솔직하면 되는 건지 말을 좀 조심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칭찬으로 들었어요. 왠지 그 단발머리 사모님하고 친해지고 싶어 졌습니다.     


3년 정도 협동(파트 사역) 목사로 일하다가 전임이 되면서 교회 사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위아래 집, 옆집이 모두 사역자 가정. 집에 있어도 어딘가 편치 않았어요. 그래서 자꾸 밖으로 돌았습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교인들도 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도, 사모라는 호칭이 너무 무거웠어요. ‘내 정체를 알게 되면 실망할 거야’ 집사님들보다 신앙이 한참 모자라는데 ‘사모’입니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웠습니다. 누구라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 예배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왔습니다. 아기가 어려서 교회 봉사가 어려운 상황인 덕에, 사택에 사는 다른 사모님들과 만날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모임에서 같이 나눔을 했던 사모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교회 사택에서 지내는 건, 어떤 제한에 걸려있는 느낌이었어요. 이 건물에 사는 이상, 사모니까요. 잘할 수 없는데, 잘해야 할 것 같은 부담. 나도 사모의 길에 진입한 것입니다.      


둘째를 낳고 자모실 경력이 길어지면서 교회 생활이 좀 나아졌습니다. 다른 사모님들과도 조금씩 왕래를 했습니다.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 놓고 한 사모님 집에 모여서 커피 마시고 빵 먹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가 둘이 되니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아토피로 고생하면서 잘 먹지고 자지도 못하는 내가 불쌍했던 모양입니다. 이 시절 남편은 아침에 밥을 해놓고 출근하는 날도 있고, 퇴근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다른 사모님들이 은근히 남편 흉을 볼 때면, 나는 ‘우리 남편은 저녁마다 청소기를 돌려준다.’며 자랑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사택에서 내가 결혼을 제일 잘한 것 같았습니다.      


금요 예배 시간, 자모실 안은 사모님들과 그 아기들이 주를 이룹니다. 그날은 아랫집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날이었습니다. 본인은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말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교회 사역으로 귀가가 늦어, 집안을 돌보지 못하는 사역자의 고충을 털어놓으셨어요. 집안 형광등도 사모님이 간다는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단발머리 사모님은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다음이 포인트입니다. 보통은 부교역자들이 사택 건물로 같이 귀가를 해서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데, 목사님이 집에 들어가면 조금 있다가 ‘위잉~’하는 소리가 들려온대요. 윗집에 사시는 302호(우리 집) 목사님이 청소기를 돌리는 소리랍니다. ‘오오~~’ 하는 반응에 내 얼굴은 빨개지다 못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디서 누가 청소기 돌리는 소리인 줄 그분이 어찌 아시겠어요. 사모님들 앞에서 남편 얘기를 떠들어댄 결과입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작은 점이 되어서 아무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뒤로는 자랑 비슷한 것도 안 했습니다.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한방에 깨달았거든요.


사모는 말을 늘 조심해야 합니다. 내 말이 설교의 소재가 될 수도 있어요. 이분들이 동네 친구 교회 친구인데, 말을 가려야 해요. 슬플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덕분에 부족함을 깨달았고 한 가지를 배웠고 조금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모자란 모습을 들키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사모가 된 소감이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열심히 할 겁니다.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 잘 해야죠.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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