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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Dec 15. 2022

안녕하세요 사모님들

왕사모의 변辯

       




부교역자 시절에 만난 사모님들과 재밌게 잘 지냈습니다. 또래도 비슷하고 신세(?)도 비슷하다 보니 통하는 게 많았어요. 한 건물에 살았던 추억에 끈끈한 정이 보태져, 지금도 만날 때마다 할 얘기가 끝없습니다.      


남편이 교회를 담임한 후로, 부부동반 노회 모임에 나갈 일이 생겼습니다. 거기에 가면 다른 교회 사모님들을 만납니다. 무려 담임 목사님 사모님들이시죠. 낯가림 천재로서, 긴장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보다 연배도 경험도 많은 그분들을 어떻게 대하는 게 맞는지 전혀 모르겠더군요.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셔야 한다니. 목사님들끼리 사모님들끼리 따로 어울리는 분위기에서 나는 대체 누구랑 어울리면 좋을까요.     


그 자리에 처음 나갔을 때는, 물으시는 말에 ‘네’라고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뭘 모를 때는 ‘말없이 웃는 얼굴’만 한 게 없지요. 그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잘못 보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여러 번 만나 보니, 모두들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전부 사모님들인데 당연하지요. 부교역자 시절, 담임 목회 초보 시절을 다 겪어보셔서 인지, 나를 귀엽게(?) 생각해 주세요. 사모님들 사이에서 막내 역할하면서 예쁨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하하.      


사모님들을 만날 때마다 좋습니다. 주로 이야기를 듣는 편인데, 아주 재밌습니다. 가끔은 ‘젊은 사람’으로서 최신 정보 같은 걸 알려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모님들이 ‘그런 게 있냐’며 배우십니다. 나도 이런 시니어 사모가 되고 싶습니다. 어른 대접받으려 하고 선배 노릇하기 좋아하는 불편한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죠.


어느 몇 년 간, 우리 교회에 부교역자 사모님이 여럿 계실 때가 있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모님들이 같은 여전도회 소속이었어요. 월례회로 모두 모인 날이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나를 보고 농담 한마디를 던지셨어요. “우리 사모님, 이제 왕사모님 되셨네. 가만히 있지 말고, 군기를 확 잡으세요!” 모두 하하하 웃으셨는데, 나는 당황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군기를 잡아요. 어련히 알아서 잘들 하실 텐데요. 대꾸를 해야 할 것 같아, 한마디 했습니다. “에고, 저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누구한테 뭐라고 하겠어요.”

  

호칭마저 길고 긴 ‘담임 목사님 사모님’은, 같은 교회 다른 사모님들과 어떻게 지내면 좋을까요? 이전 교회의 담임 목사님 사모님들을 떠올려봅니다. 두 분 모두 만나면 반갑게 인사만 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잘 모르겠어요.


‘내가 부교역자 사모라면, 담임 목사님 사모님이 어떤 분이면 좋을까’ 생각하면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는 사모님? 선물 주고 밥 사 주는 사모님? 교인들 앞에서 내 칭찬해주는 사모님? 오우, 나는 다 별로입니다. 그냥 그분이 나를 신경 쓰지 않으시면 제일 좋겠습니다. 나를 좋은 사람으로 여겨주시면 좋겠지만, 그걸 증명해 보일 자신도 없고 방법도 모르겠어요.     


왕사모님 대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 마치 ‘시어머니’와 같다고 할까요. 칭찬이든 조언이든 말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곱씹게 됩니다. ‘대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일까?’ 나는 부디 좋은 시어머니 같은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사모끼리만 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목사님도 교인들도, 그마음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아줄 수 있는 사이예요.


사모는 아주 중요한 ‘동역자’입니다. 남편이 충실하게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잘 내조하는 우리 교회 사모님들이 고맙습니다. 보이지 않는 역할이 크거든요.     

사역자들이 교회에서 하는 일은 설교, 찬양 인도, 성경공부뿐만이 아닙니다. 교회의 행정, 교육부서 관리, 심방까지, 손 가고 시간 들고 마음 써야 하는 일들이 쌓였습니다. 바쁜 사역자들이 교회에 집중하려면 가정이 평안해야 합니다.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들은 잘 모릅니다. 밤 늦도록 집에 오지 않는 까닭을 알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는 일,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고, 각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역할이 만만치 않아요. 사랑하는 아빠는 우리 가족만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는 이유를 설명해줘야 합니다. 남편과 교회를 사랑하고 사역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모님은 너무 힘든 자리 같아요. 정치인의 아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의 위치 때문에 말도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부담이 얼마나 크겠어요. 아휴, 저는 감히 상상도 못 하겠어요.’ 예전에 어느 집사님이 내게 하신 말입니다.      


사역자는 남편들이지만, 아내로서 나눠질 몫이 있습니다. ‘동역’입니다. 소명을 따르는 남편을 둔 이유로 무조건 감당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남편만 보고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구간이 있습니다. 은혜 아니면 버틸 수 없는 순간이 문득문득 찾아옵니다.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철저히 무익한 종으로 사는 모든 사모님들이 귀합니다. 하나님 나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함께 동역해 가는 한 분 한 분이 조용히 빛납니다. 남편 사역자들 뒤에서 묵묵히 성실한 선후배, 동료 사모님들이 예뻐요. 그냥 착하고 똑똑합니다. 안쓰러운 등을 쓸어주고 지친 어깨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잘했고, 잘하고 있고, 계속 잘할 겁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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