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지붕 집에 놀러 오세요.
사모님, 놀러 가도 돼요?
하나님을 알고 믿는 복을 받은 것이 감사합니다. 실력이나 노력으로 얻은 것이라면 으쓱하겠지만, 아무 자격도 없이 누리고 있어요. 은혜입니다.
받은 복을 세다가 그만둡니다. 끝이 없어요.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법을 궁리해 봐요. 주를 위해, 주님의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 가족이 지내는 집은 교회 사택입니다. 교회 재정으로 마련해 주셨어요. 그 안에 담긴 사랑과 헌신을 생각하면 또 감사합니다. 있는 동안 ‘내 집’처럼 생각하고 아끼고 가꾸려고 해요.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듭니다. 온 식구가 평안을 누리고 사랑을 나누는 곳이니까요. 남편과 나, 세 아이가 음식을 먹고 쉬기도 하며 나이 들고 자라는 공간입니다. 소중해요.
언제부턴가 우리 집을 좀 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몸이 안 좋아서 살림을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안 쓰는 짐들을 내다 버리고,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착착 넣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지만 밀린 집안일은 도무지 줄지를 않았습니다. 청소 빨래 설거지가 늘 쌓여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집에 오는 일이 없도록 했어요. 택배가 오면 문 앞에 두고 가달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문 여는 게 싫어서 배달음식도 안 시켜 먹을 정도였죠. 외출하면 지저분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습니다. 깨끗하지 않은 집은 무서워요. 잔뜩 밀린 '일거리'가 나에게 인상을 쓰면서 손가락질하는 기분이랄까요.
아토피가 낫고, 무기력증에서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좀 자라서 손이 덜 갔어요. 힘닿은 대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깨끗하고 예쁘게 정돈된 집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오랫동안 아파서 미안한 마음, 불평하지 않고 지낸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했습니다.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은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모가 시원찮은데도 문제 삼는 분이 없었어요.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기고 묵묵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나는 진짜 복 받은 사람이에요.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교회를 향한 고백을 늘 품고 살아요.
아기 키우느라 힘든 엄마들에게 마음이 많이 갑니다. 치워놔도 금세 어질러지는 집, 정리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집에서 탈출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 같아요. 예전의 나처럼 말입니다. 아이들 데리고 갈 만한 곳도 많이 않잖아요. 키즈 카페나 놀이터 말고 마음 편히 아이를 풀어놓을 공간이 없습니다. 친정, 시댁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분들은 더 안 됐습니다.
부모님 세대에 비하면 요즘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한 가전기기에 다양한 육아용품, 자상한 남편까지 있잖아요. 그래도 육아와 집안일에서 자유로운 엄마는 여전히 많지 않습니다. 세상이 달라진 만큼 신경 쓰고 챙길 것도 늘어났어요. ‘엄마 역할’은 시대를 불문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아기 엄마들을 집으로 불렀어요. 와서 마음 편히 있다 가기를 바라면서요. 이런저런 얘기하고 먹고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세 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했어요. 상황극 하고 보드게임 하고, 골목에서 자전거 타면서 놉니다. 엄마 집사님들도 같이 오시라고 했습니다. 사모님들이랑도 우리 집에서 모여요. 구역모임, 찬양 연습.. 하러 오신 집사님들이 한나절 있다 가십니다. 코로나 유행이나 춥고 더운 계절 탓에 가끔 뜸해질 때도 있지만, 우리 식구들이 '누구 안 놀러 오나..?' 할 만 하면 집을 열 일이 생겨요.
내가 할 수 있는 즐거운 섬김입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에요. 집 청소를 하고 먹을 것을 준비하면서 기분이 좋습니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나누는 장소를 제공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처음에는 ‘목사님 댁’이라고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나중에는 다들 부담 없이 편하게 오십니다.
사택과 교회는 차로 5분, 걸어서 2-30분 정도 걸릴 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교인들과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할 일이 있다면, 차는 우리 집에서 마시자고 모셔 와요. 미리 약속을 하지 않은 경우라도, 언제든 식사나 차를 대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둡니다. 내놓은 먹을거리가 심하게 소소하지만 장로님, 권사님들도 맛있게 드셔주십니다. 하하. 감사하죠. 남녀노소 언제든 환영이에요. 커피와 장난감, 과자, 음악과 주차장이 완비돼 있습니다.
종종 교인들의 가정에 심방을 갑니다. 교회에 처음 등록을 하시거나 이사 같은 대소사가 있을 때 예배를 청하세요. 심방은 목회자의 아주 중요한 사역입니다. <대심방> 기간에는 하루에 서너 가정을 방문하기도 해요. 예배를 통해 가정에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 참 귀합니다. 찬송하고 기도하는 소리가 이웃으로 새어나가지요. 마치 영역표시를 하고 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이 집은 예수 믿는 가정,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집’이라고 선포하는 거죠. 교회에서 교인들을 만날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살아온 얘기, 고민, 고백.. 들을 많이 듣고 오래 대화하면서 훨씬 친밀해져요. 한 번이라도 심방한 가정은 마음에 선명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집안의 모습과 가족들의 표정이 떠오릅니다.
교인들이 우리 집에 다녀가실 때마다, ‘심방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를 위해 기도할 때, 우리 가정이 그려지시지 않을까요. 보고 아시는 만큼 중보 해주실 거라 생각해요. 목회자-교인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니, 축복입니다.
첫째 딸 아이는 "저는 사모 못 하겠어요" 말합니다. 엄마처럼 사람들을 초대하기 힘들 것 같다고요. 하나님 뜻은 알 수 없으나, 나는 아이가 사모를 해도 좋겠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교회를 섬기고 사랑하면 되는 거니까요. 힘든 줄 모르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모님 놀러 가도 돼요?” 카톡 메시지가 옵니다. “네. 오세요!” 답을 보내면서 감사해요.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해 주시니 좋습니다. 아이들도 데려오시고 가끔 남편들도 같이 오십니다. 집안이 복작복작 꽉 차요. 남자팀 여자팀 아이팀이 자연스레 나눠서 시간을 보냅니다. 과일을 깎고 과자 봉지를 뜯으면서 즐겁습니다. 이런 게 함께 사는 재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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