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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Mar 09. 2023

두 번째 장래 희망

이루지 못한 이루고 있는



대학에서 광고홍보를 전공했습니다. 같은 학부에 속해 있는 신문방송학 전공 과목도 많이 들었어요. 수강신청 할 때마다 으쓱했습니다. 강의명이 엄청 멋졌거든요. 교수님들도 훌륭했습니다. 졸업 후에 광고회사 AE(광고기획자)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졸업하기 전에 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취업문이 좁아졌어요. 첫 대학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수능을 보고 입학한 학교였거든요. 그래서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학비 아르바이트하느라 학점관리를 잘 못해서, 취업할 자신이 없었어요. 당시 흔했던 어학연수도 다녀오질 않았으니, 입사지원서에 뭐 적을 게 있어야 말이죠. 지금의 나라면 갈 만한 회사를 찾아 도전을 해봤을 텐데, 그때는 그랬습니다.      


학원에서 국어과목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오래 했어요. 졸업하고 그 일을 계속 했습니다. 수능 언어영역, 논술 과외를 하고, 입시 강사로 학원 전단지에 얼굴을 담기도 했어요. 일이 잘 맞았습니다. 가르치는 게 재미있었어요. 좋은 ‘학원쌤’이 되고 싶었죠. 스무 살부터 서른넷까지 강사 일을 했으니, 나름 잘 버텼습니다. 그때는 큰 학원 작은 학원 할 것 없이 아이들이 많았어요.


즐겁게 일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말의 패배감을 느꼈습니다. 전공을 살리지도 못했고, (당시에는) 4대 보험이 되는 어엿한 직장이 아니라는 게 좀 그랬어요. 직업을 말해야 할 때면 조금 위축이 됐죠.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10년 넘게 전업 주부로 살면서, 강사라는 호칭이 꽤 괜찮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든 ‘돈 버는 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어요. 남편에게 불상사라도 생기면 나는 뭘 해 먹고사나 싶어서 초라해지기도 했습니다.

  

‘중년’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었어요.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게 됩니다. 2-30대를 어떻게 살았었는지 생각해 보면 부끄럽습니다. 콤플렉스와 자기 연민, 불순종과 불신앙의 늪에서 허우적거렸어요. 이제라도 잘 살아야지 마음을 먹습니다.      


그렇다고 애쓰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누구나 그렇듯 잘 살고 싶었습니다. 부자 말고요. 제대로 올바르게 살려고 했다는 말이에요. ‘착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됨됨이가 좋아서 칭찬할 만한 사람, 하는 일마다 야무져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요. 착하기만 하면 만만하게 보일 것 같고, 똑똑하기만 하면 아무도 나를 안 좋아할 것 같았어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사랑받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어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가족들의 사랑, 이웃의 사랑을 이미 넘치게 받고 있거든요. 착하지도 똑똑하지도 않은 나를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압니다. 한결같은 관심과 격려를 받고 있어요. 자주 실수하고 많이 모자라는 데도,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더 나아지라고 재촉하지 않으시고, 지금 모습 그대로 귀하다고 하십니다.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하나님이 정해두신 연한은 알 수 없지만, 이쯤에서 ‘장래 희망’을 재정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젊으니까요.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 지, 그려 놓고 가야겠습니다.      


큰 기대 없이 결혼했는데, 결혼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아이 낳으면 힘들기만 할 줄 알았는데 상상 못 한 기쁨이 있어요. 나이 들면 슬플 줄 알았는데 인생의 가치를 이제 조금 알겠습니다. 나중 일을 섣불리 넘겨짚을 게 아니었어요. 목표와 방향만 제대로라면 속도는 어때도 좋습니다. 빨리 가게 하실 때는 달리고, 늦추실 때는 천천히 걷거나 멈추면 돼요.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인생이 장난이야? 사는 게 쉬운 게 아니!’ 겁주는 할머니는 별로입니다. ‘걱정하지 마. 하나도 염려할 것 없어. 기도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돼. 나 같은 사람도 지나왔잖아. 너는 훨씬 더 잘 해낼 거야.’ 용기를 주고 싶어요. 걱정 근심하느라 허송하기에는 세월이 아깝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열흘 거리를 40년 동안 헤맨 이유도 ‘두려움’ 때문이잖아요.      


“‘나는 무능하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외치면서 유유히 전진해!”

그렇게 말할 때마다 얼굴에 기쁨과 확신이 넘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살면서 만났던 분들을 떠올려 봅니다. 좋은 분들이 정말 많아요. 하나님 은혜입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울 수 있거든요. 똑같이 하기 어려우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내봐요. 마음을 어렵게 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또한 은혜지요. ‘저렇게 하면 안 되는 거구나’ 또 배웁니다.


그중에는 ‘그리운 분’이 있습니다. 문득문득 생각나고 보고 싶은 분이요. 만날 수 있다면 만나고, 그럴 수 없다면 마음 깊이 그리워합니다. 같이 했던 시간들을 곱씹을 때마다 마음이 저립니다. 감사해서요. 말할 수 없이 보고 싶어서요.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남편이나 아이들, 손주들이 그래줄까요. 주님이 만나게 하신 어떤 분일 수도 있겠군요. 내가 받은 사랑과 위로에 주님 주신 마음을 보태겠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힘써 나눌 거예요. 내가 따뜻한 손길과 부드러운 말투, 다정한 표정의 그분을 떠올리듯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그렇게 기억해 주면 좋겠습니다.      

‘쨈빵 할머니’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만날 날을 손꼽는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이 땅에서든, 천국에서든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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