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하셨듯, 나도 그렇게
글 한 편을 공들여 쓰고 있었다. 아니, 다 썼었다.
제목 :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면 좋겠다
소제목 : 나는 내 엄마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엄마를 생각하면 변명이나 원망하는 말만 떠오른다. 내가 하는 말에 그녀는 특유의 냉소와 비아냥으로 답을 할 것이다. 난 억울함에 목이 메일 테고, 타이밍 맞춰 적절한 폭언들이 날아와 내 입과 생각을 모두 막아버리겠지. 내 속에는 엄마한테 잔뜩 욕을 먹고 웅크려 우는 어린 내가 있다.
엄마는 피하고 싶은 폭탄이다. "너는 참 성격 이상해." 맥락도 없이 쏘아붙이는 그녀의 한마디면, '평화'는 자취를 감춰버린다. 곱게 가꾸어 놓은 '기분'은 "너는 네가 굉장히 잘하고 있는 줄 알지?" 던지는 말에 폐허가 된다.
그녀에 대한 거부감이 곪고 곪아 퉁퉁 부어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줄만 아는, 이 초대형 뾰루지는 건드려질 때마다 너무 아프다. 어쩌지를 못하다가 마음 한 구석에 숨겨버렸다. 관심 없는 척, 상관없는 척 덮어두고, 건드리지 않게 조심한다. 기쁜 일에, 감사한 일에 집중하고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없어지겠지. 그럼 나도 다른 집 딸들처럼 엄마를 좋게 대할 수 있을 거야.
브런치에 몇 편의 글을 쓰면서 어딘가 불편해졌다. 덮어둔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이다. 고민 끝에 아픈 데를 펼쳐서 글로 적었다. 이해받고 싶었다. '참 안 됐네' 여겨주면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진심을 싹싹 긁어 글에 담았다. 나만 알고 있던 이 유치하고 불손한 본심을 이렇게 내보여도 될까? 자기 엄마 싫어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길어지는 글에 마음이 복잡했다.
엄마를 좋아할 수 없는 이유와 그것 때문에 힘든 심정을 오해가 없도록 잘 다듬어본다. 내용이 자연스레 흘러가는지 문장들을 읽고 또 읽는다. 그런데 정성껏 퇴고를 할수록 이게 뭔가 싶다. 글을 고칠수록 나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이 선명해진다(엄마에 대해 묘사한 부분에서 제일 그랬다). 나는 이 글을 왜 쓰는 것인가. 글로 치유되고 위로받아보겠다는 명분은 초라해져 버렸다. 궁금해하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형편없는 엄마와 비겁한 나를 잘 소개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부담스럽다. 나는 누구를 용서하고 말 자격이 없다. 용서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용서하기 싫은 마음과 맞닿아 있는 지도 모른다. 내가 싫은 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용납해야 한다는 사실일지도.
내가 받은 용서를 생각해본다. 갚을 수가 없는 사랑이다. 엄마의 잘잘못을 따지는 건, 파산 신청해 백억을 탕감받아놓고, 백만 원 떼먹은 사람에게 쫓아가 멱살잡이를 하는 꼴이다. 그녀를 싫어하는 게 힘들다. 모든 사람에게 선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지만, 그럴 수 없는 딱 한 사람 때문에 불편하다.
아무리 꽁꽁 싸매도 스며 나오는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언제까지 품고 살 수 있을까. 물러 터지든 도려내든 빼내야 할 독인 줄은 알지만, 나의 노력들이 아무 소용 없었기에 이제는 손을 놓아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면, 영락없이 엄마 꿈을 꾼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웃기고 있네!' 눈을 흘긴다. 무턱대고 몰아붙이는 엄마에게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면, 투덕투덕 남편이 나를 깨운다.
(나이 마흔여섯에 꾸는 악몽이. 훗.)
주님, 저는 그녀를 어떻게 대할지 모르겠습니다. 억지로 참는 데 지쳤습니다.
제 정체가 시커먼 죄인이라는 걸, 더 낱낱이 깨닫게 해 주시겠어요? 차라리 부끄러워 엎어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지 저에게 알려주십시오. 잘 모르고 손가락질한 게 미안해 숨도 못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잘못을 깨닫고 울면서 데굴거릴 수 있으면 이보다 덜 괴롭겠습니다.
고통의 매듭을 스스로 틀어쥐고 놓지 못하는 교만하고 미련한 저입니다. 주님은 대체 어떻게 저를 용서하셨나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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