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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Jan 22. 2022

하루살이

시원찮아도 괜찮아



 아침에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질 못하겠다 싶으면  영락없다. 이런 날은 이유 없이 온종일 맥을 못 춘다. 왜 또 이러지. 맛이 간(?) 원인을 찬찬히 생각해보다가 곧 다시 잠에 빠져든다. 얼마나 잤을까. 배고프다는 아이들 성화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한다. 에고. 아침밥도 못 줬는데, 점심때가 지나있다.


 그 사이에 물 먹기 대회라도 열었던 거니? 12개의 물컵이 모두 나와 싱크대 위를 메우다 못해, 종이컵들까지 합류했구나. 미안스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조금 서글퍼진다. 평소에 즐겁게 하던 일도 이럴 땐 중노동처럼 느껴진다. 온전치 못한 정신으로 온전한 식탁을 차려주고 비슬비슬 침대로 향한다.

 으. 너무 힘들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좋지 않았다. 학교 소풍, 수학여행, 수련회에 안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친구들과 옷 사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반장에게 참가비를 내면서도 속마음은 그랬다). 어지럽고 속이 미슥거려서 즐겁게 누리지 못할 게 뻔하지만 입원을 한 것도 아니니 가지 않을 명분이 없었다.


 언제나 체력이 문제였다. 학교, 직장, 교회에서 힘을 다하고 나면 다른 무엇을 할 에너지가 남아있질 않았다. 덕분에 취미도 특기도 없다. 마음으로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어차피 해내지 못할 것 같아 지레 포기하곤 했다.


 결혼과 함께 시작된 집순이 생활 17년 차. 외출할 일을 만들지 않고, 웬만해선 나가지 않는다. 바이러스 위기에 최적화된, 철저한 스테이 홈(stay-home) 라이프다. 몇 주 전, 일이 있어서 2-3시간 정도 외출했다가 귀가했다. 식구들 저녁을 차려주고 피로가 몰려와 잠시 쉰다는 게 거실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방바닥에 앉은 채로 30분 가까이 잤다는 걸, 얼핏 깨서 시계를 보고 알아챈 순간에는 조금 울컥 했다. 이게 뭐야 진짜. 다음 날에는 온종일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고, 그다음 날 점심때쯤 겨우 정신이 들었다.


  필요할 때가 아니라면 외출은 꺼리지만, 우리 집에 손님이 찾아오는 것은  반갑다. 힘들지 않으냐는 걱정에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진심의 손사래를 친다. 나로서는 사람들과 어울릴  있는 (이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 편안하고 익숙한 집에서의 모임이 내게는  위로고 기쁨이다. 손님이 오시든 안오시든 저녁에는 어차피 방전된다. 그러니 언제나 누구든지 대환영.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손님들을 배웅할 , 마음이  좋다.


 40대가 돼서야 시원찮은 내 체력을 인정했다. 태생이 이렇다는 걸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게으르지 않으려고 나약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제대로 버텼다고 하기에는 앓고 있는 만성 증상이 너무 많았고, 꽤 자주 응급실에 실려갔다. 정확한 병명이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괜찮은 척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병원에서도 선명한 진단이나 처방을 내려주지 못했다. 쉰다고 쉬어도 컨디션이 좋은 게 어떤 느낌인지를 잘 모르겠다. 건강검진 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하니, 나도 모르는 꾀병을 오래 앓고 있는 기분이다.


 종일 하품을 하면서 바쁘게 살았다. ‘아, 졸려!’가 늘 입에 붙어있었다 (수시로 각성을 해야 했고, 커피를 수혈하듯 마셨다). 불치의 증상들과의 오랜 싸움에 지쳐버릴 때쯤, 타고난 체력이 모자라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만성 통증, 만성 피로.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야. 하나님은 이런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내가 애쓰며 사는 걸, 아시는 분이 계시니 됐다. 남들보다 모자란대도 나만큼을 다하면 그만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닦달했던 세월이 안타깝다. 시원찮은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나는 좀 개선될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예전의 나에게 미안스럽다. 수고하는 나에게 칭찬이나 위로 한번 해주지 못하고, 냉정했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힘들겠지. 엄살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고, 그래서 참았다. 특별히 배려받으려 하는 건, 이기적이고 철없는 태도라고 생각했다. 학년에 맞게 공부를 하고, 받는 월급대로 성실히 일했다. 아프고 힘든 것은 어차피 내 몫. 걱정하는 말도 하루 이틀이다.


 태어난 세 아이들을 어떻게든 돌봤다. 언제나 넋이 반쯤 나가 있었다. 자꾸 바닥으로 내려앉는 기분을 붙잡는 게 어려웠다. 다른 엄마들은 직장 다니고 친구들 만나고 취미 생활하면서 어떻게 육아에 살림까지 하는 걸까. 부럽다기보다는 신기했다. 약속 시간에 맞춰 치장을 하고 외출할 생각이나 뭔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라는 게 내게는 전혀 없었다. 아이 셋을 데리고 놀이터에 가는 것은 드문 일이고 마트 나들이도 몇 달에 한 번쯤 큰 마음먹고서야 나섰다. 급기야 커피를 아무리 마셔도 반짝 효과를 느낄 수 없게 됐다. 늘 졸렸고, 어디서나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상태로 지냈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하루 이틀쯤 정신을 못 차리고 아파도 된다(?). 컨디션이 바닥까지 떨어지면 끝없는 잠에 빠진다. 식구들 식사만 겨우 챙겨고는 바로 쓰러져 눕는다. 아이들은 엄마가 또 아픈가 보다 하고 각자의 일과를 보낸다. 걸핏하면 며칠씩 자리보전하는 엄마를, 아이들은 ‘약한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내가 피곤해서 조금 예민해진다 싶으면, 우리는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 누우시라며 등을 떠민다 (속이 깊어진 건지 능청맞아진 건지). 같이 뛰어놀아줘 본 적이 엄마, 아픈 데가 많기도 많은 엄마, 늘 기운 없는 엄마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일, 내 몫을 하는데 전력全力을 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수많은 질문과 요구에 성실히 답한다. 기운이 빠듯해도 농담할 여유를 가지려고 마음의 훈련을 쉬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힘을 다해 움직이고 성의를 다해 생각한다. 심심하거나 지루할 시간이 없다. 하루가 짧고 일은 끝이 없다. 할 일이 자꾸 눈에 보이고,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 싶으면 쓰러지듯 쉬고, 정신이 들면 남은 하루를 또 부지런히 산다.


 다 모르겠고, 그냥 오늘 하루 몫만 다 하자.

 하루살이 심정이다.


 모자란 기력으로 이어가는 홈스쿨이고, 겨우 해내고 있는 목사 사모의 역할이다 (주님이 아신다). 할 만하다 싶은 날이 없지만, 물러서는 날도 없다. ‘저는 못 할 것 같지만, 해야 한다면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매일의 간절함에 하나님은 한결같이 신실하시다.


고린도후서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게 허락하신 모든 것이 분수에 넘친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에 겹다. 하루를 채우고 자리에 누울 때면 피로와 함께 감사가 나를 덮는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겠습니다!’ 눈 질끈 감고 걸어왔던 길을 가끔씩 돌아보면,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이 모두 끝나 있는 것을 본다.

아, 또 분수에 넘친다.


 오늘도 나의 수고와 사랑과 기쁨을 남김없이 다 썼다. 내게 내일 하루를 허락해 주신다면, 딱 오늘처럼 살고 싶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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