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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Aug 18. 2021

싸우는 부모 밑에 자란 아이

아이의 심정을 들려 드립니다






 친정 아빠의 생신이었다. 생신을 어떻게 보낼지 의논하려고 친정에 전화를 했다. 두 분이 격전 중이라 생일 축하할 분위기가 아니라 신다. 내 부모님은 46년째 사랑과 전쟁의 세월을 살고 계신, 365일 참전 부부시다.


 부부는 다 그렇게 싸우면서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절대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언쟁, 분노, 눈물, 원망, 욕설, 폭력... 내 부모님은 사소한 일에도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비난했다.

 

 브런치에서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글을 많이 읽는다. 부모의 불화쯤은 귀여운 투정이 돼버릴 만큼,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을 흘린다.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글 속에 흐른다. 나는 속없이 나이만 먹은 것 같다. 언제쯤 상처에서 완전히 헤어날 수 있을까? 이제는 넉넉하게 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식들이 중년이 되도록 변함없는 부모님 때문에 속이 상한다. 두 분의 끝없는 원망과 불평을 듣다 보면 '이제 그만...' 어릴 때의 마음이 된다. 대체 이 상황은 언제 끝이 날지. 이제 지치셨을 때도 됐건만, 아직 서로 거슬리고 화나는 게 많으신가 보다. 두 분 사이를 좁혀보려는 나와 동생의 노력은 (수십 년째) 아무 소용이 없다. 너무 속상해서 하나님께 묻는다. '어떡해요?' 아이처럼 묻는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신다. 부드럽게 내 등을 쓸어주시는 그분의 위로를 듣는다. '힘들지?'


 남편과 조금만 마음이 안 맞아도 하루가 너무 힘들다. 따지고 싶은 말이 솟구쳐 오르지만, '부부싸움'은 절대 싫다. 그 끔찍하고 지겨운 단어를 피해, 기도한다. '싸우기 싫습니다. 도와주세요!' 언성 높이지 않고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다 보니 기술이 늘었을까. 기도를 들으신 분께서 인내심을 공급해주신 것일까.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의 유익을 믿으며 크고 작은 고비를 무사히 넘긴다. '나 죽으면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이야' 웃으면서 하는 말은 반만 농담이다.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끙끙 앓기도 한다 (남편도 나름의 고충이 클 것이라 짐작한다). 결혼 17년째 안 싸우기 수련(?) 중이다. 수련의 핵심은 '참기'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기'. 언짢은 마음 얼른 털어버리는 스킬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여름밤, 창문을 활짝 열어 두고 잠자리에 든다. 세상이 고요한 한밤중, 밖에서 싸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부부싸움이다. 아빠 엄마를 말리며 아이가 악을 쓰며 운다. 꼭 ‘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 하는 것 같다. 소리를 듣고 있는 내 안에 불안과 분노가 솟아오른다. "이것 보세요, 아이 우는 소리 안 들립니까? 아이가 저렇게 울잖아요!!" 싸우는 부부를 찾아가 뒤통수를 한 대씩 쳐주고 싶다. "조용히 하세요. 얼른 아이부터 달래고, 미안하다고 하세요!" 안타까운 내 마음이 달려가 우는 아이를 꼭 안는다. "걱정 마. 힘들지? 미안해." 서로를 향해 죽일 듯 달려드는 부모님 사이를 파고들던 어린 내 모습이 떠오른다. 가만히 좀 있으라며 나를 향해 부라리던 엄마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살아있는 게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심장이 긁힌 듯이 아프다.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어떻게 본인들 생각만 하지? 비명을 지르듯 우는 아이는 안중에도 없는 거야?


 언젠가 <싸우지 않는 부부가 위험하다>라는 책 제목을 본 적이 있다 (읽지 않았다). 정말 그럴까? 이번 부부싸움은 매우 유익했다며 선전善戰을 만족하는 분을 본 적이 있다. 잘한 부부싸움도 있나? 서로를 맹렬히 물고 뜯으며 이혼 않고 버텨온 세월을 무용담처럼 들려주는 분도 있다. 하도 싸워서 이제 아이들이 신경도 안 쓴단다. 아이들이 크니까 부담 없이 싸울 수 있어 좋다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갈등이 없는 부부는 없다.
상처가 남지 않는 부부싸움은 없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것은
아이들을 전쟁터 한가운데 세워두는 셈이다.
(그 상처와 불안을 어쩔 것인가)


 '재미없게 사는구나' '솔직하지 않은 사람들이군' '부부가 인격이 엄청 훌륭하신가 보네' 다양한 추측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우리 부부가 싸우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싸우면 다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 다음이다). 마음의 상처는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치 전쟁의 상흔과 같다. 부서진 곳을 재건하고 다친 곳이 아물어도 전쟁 이전처럼 되기는 어렵다. 보통은 상처가 다 낫기 전에 또 싸운다. 나를 아프게 한 배우자를 좋게 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한 팀이어야 마땅할 사람이 적이 되어 나를 공격해오다니. 급소를 찔러 상대방을 무력하게 할 수 있는 말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온 힘을 다해 서로의 상처 위에 더 큰 상처를 낸다. 그것은 악순환이 되어, 후천적 장애처럼 몸에 밴다. 작은 일로 크게 싸우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상대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들춰내다 보면 결국 둘 다 오물을 뒤집어쓰게 된다. 너무 불쾌하고 억울하다. 결혼해서 불행하다.


 모든 부부는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배우자를 다치게 하지 않도록 서로 조심해야 한다. 결혼할 때 서로를 지켜주겠다 약속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배우자에 대한 평생 무한책임을 기쁘게 자처하며 결혼했다.


 감정이 앞서 아무것도 안 보이기 전에 숨을 고르고 생각하자. 사랑하는 아이들 앞에서 싸우지 말자. 부부의 불화는 아이의 뇌를 마비시키고 정서를 파괴한다. 아이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다.


 부부의 문제는 둘이서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다. 아이들 앞에서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부끄럽고 유치한 일이다. 걸핏하면 감정의 밑바닥까지 다 드러내는 부모를 신뢰하고 존경하기가 쉽겠는가.


 이 글은 끝없이 싸우는 부모를 둔 (어른이 된) 아이의 진심이다.

 

 아이들에겐 부모가 전부다. 마음을 기댈 데 없는 아이들은 우울의 낭떠러지 끝에 매달려 있을지 모른다. 얼른 달려가 보길 바란다. 안아주고 쓸어주고 미안하다고 하라. 부모를 이해해서 아무 소리 않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죽도록 싫고 무서워서, 눈물의 외침을 마음속 가장 밑바닥에 묻어버렸을 뿐이다. 힘없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착한 일은 그저 모른 척하는 것이다. 집에서 불화하면서 밖에 나가서는 체면 차리는 부모를 보면서, 아이는 '(이상한) 어른'을 배운다.


 아이는 도움받을 데가 없다. 부모의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말했다가 더 안 좋은 상황이 될까 봐 겁난다. 더 자라면, 어차피 부부의 문제에는 아무도 개입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부모는 아이의 말(마음)을 듣지 않는다. 무력감이 든다. 우리 집이 부끄러워 감추고 싶다. 나의 불행을 들켜버리면 정말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 잊자. 덮자. 참자. 아무렇지 않게 지내자. (나 자신을 위해) 괜찮은 척 살자. 아이는 그렇게 힘듦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어 간다.

 





 밥을 안 주고 옷을 안 입히고 매를 때려야만 학대가 아니다. 부부갈등의 난장판 속에서 아이들 영혼의 살점이 뜯겨나가고 있음을 직시하시길 (자는 척하고 있는 아이의 심장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깨어 요동친다)!


부부의 문제를 두 사람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

어른답게 갈등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평안한 가정을 제공하는 것이

부모의 엄중한 의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 표현이 다소 격해서 송구스럽습니다.


 불화하는 부부는 서로를 탓하느라, 아이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습니다. 그 속에 자라 어른이 된 아이의 아픔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발 아이들 앞에서 다투지 마십시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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