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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Jul 26. 2021

오늘도 커피를 안 마셨다

카페인 끊는 중






 허전하다. 1L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운전석 컵홀더에 꽂을 때 든든함을 이제 다시는 느낄 수 없다. 이디야 스탬프를 모아서 받은 프리쿠폰도 스벅 앱을 깔고 받아둔 웰컴 쿠폰도 아직 쓰지 못했다. 캡슐커피머신과 스벅 캡슐 100개를 산 지, 열흘도 안 됐다. 우유만 부으면 되는 바닐라라테 파우치가 일곱 개나 남았다.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 한채, 갑자기 커피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커피를 마시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끊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커피는 나에게 술, 담배만큼이나 해로운 것이었다. 부정맥, 빈혈, 고혈압, 위장 질환, 신장 기능 문제... 가 있으니 마시지 말라는 많은 의사분들의 말에 "네네.." 대답만 했다. 커피가 너무 좋았다. 나에게 독이 된다는데도 이상하게 커피가 약처럼 느껴졌다. 카페인의 도움으로 대학에 합격했고 월급을 받았고 육아를 했다.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마셨으니, 혈중 카페인 농도(?)를 늘 유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를 말해 주는 여러 개의 키워드 중, [커피]는 분명 Top 3 안에 든다.


 고등학교 2학년 , 학교 계단 홀에 자판기가 생기면서였던  같다. 달달 고소 쌉쌀한 커피는  사랑,  정신이 되었다. 2교시  쉬는 시간이 나의 커피 타임. 평소에는 일반 커피, 시험기간이나 모의고사 당일에는 고급 커피. 동전을 넣으면 '~ 타그닥' 종이컵이 내려오고,  가지 가루가 황금비율로 촤락 쏟아진다. 정량의 뜨거운 물이 담기면 음료 출구에 김이 서리고 커피 향이  코와 뇌를 감싸며 살랑인다. '한모금 하고, 힘내!’ 어떤 격려와 응원이 나를 이렇게 깨워줄  있을까. 고마운 녀석! 제발 자판기를 없애지 말아 주세요. 마음속으로 학교 당국(?) 여러  빌었고, 졸업할 때까지 충성스럽게 자판기에 동전을 바쳤다.


 뜨거운 물이 없을 땐, 커피믹스를 생수병에 넣고 힘껏 흔들어 마셨다. 커피 사는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고, 웬만해선 커피를 남기지 않았다. 가장 맛있는 캔커피를 찾아냈고, 더 맛있는 빨대 커피를 발견했다. 에스프레소 샷이든 드립으로 내린 것이든, 이름이 '커피'면 다 좋았다.


바 로 이 거 지



 첫사랑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실연의 아픔을 겪어보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첫날, 오랜 연인과 헤어진 기분이 이런 걸까 싶었다. 드라마 속 의사도 경찰도 학생도 다 커피를 주문한다. 젊은이도 어르신도 모두 커피를 마신다. 내 눈엔 커피만 보인다. 그들이 느끼고 있는 향, 맛, 온도를 상상만 하려니 서글프다. 커피를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제 못 마시는데. 카페 간판을 눈으로 쓰다듬으며 애잔한 마음이 들고, 테이크아웃 투명 컵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손에 자꾸만 눈이 간다. 아, 좋겠다. 나는 이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커피를 살 수 없는데. 흐흑!


 부정맥 시술을 앞두고도 시술을 마치고도 커피를 마셨다. 역류성 식도염에 목구멍이 타는 듯해도, 속이 쓰려 명치를 감싸며 끙끙대도 커피를 마셨다. 미련하고 무모한  알면서도 끊을 생각은  했다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하면 너무 슬펐다. 차라리 몸이 아픈  겠다 싶을 지경이었으니, 정도를 넘어선  틀림없었다. 드라마 슬의생에서 딸들에게 간이식을  차례나 받고도 술을  끊는 아버지에게서  모습을 봤다. 나도 중독자였다. 카페인 중독.


 하루에 커피를 얼마나 드세요?


 알고 지내는 한의사 분이 물으셨다(진료를 받는 상황은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질문에 "대중은 없지만, 많이 마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에스프레소 3-4샷 정도입니다'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더 마실 때도 꽤 많기 때문이다.

 그분은 1일 1캔 하시던 애정 하는 캔커피를 최근 생긴 부정맥 증상 때문에 딱 끊어버리셨다고 했다. 자연스레 내 시술 경험을 꺼냈고 나는 아직 커피를 끊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어릴 때부터 체력이 약해, 학생 때부터 최근까지 종종 119 구급차를 타곤 하는 내 건강상태까지 모두 털어놓았다(진료실이 아닌데도 차근히 컨디션을 물어가며 상담을 해주시다니 감사하다). 체력이 달리고 만성피로에 시달리니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다는 말은 중독자의 핑계고 변명이었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게 커피(모든 카페인)를 끊어야 한다고 하셨다. 오늘 커피 때문에 본인을 만나게 된 것 같다며,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성경을 통해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聖殿인 것을 안다. 이 정도로 커피를 의지하는 건 하나님 앞에 좋지 않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지나쳐버렸다. 허락하신 시간 동안 내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은 내 몫인 걸 알면서 가볍게 여겼다. 하나님께 나를 다 내드리겠다 하면서 '커피' 영역만은 움켜쥐고 놓지 않았다.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지만, 스스로 자초하는 건 잘못이다. 피곤해서 커피를 마시고 커피 때문에 몸이 힘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하지만 그 계기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은 몰랐다.


  커피를 안 마신 처음 3일 정도는 환자처럼 밤낮으로 잠을 잤다. 두통이 심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계속 잤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오늘로 6일째. 고2 이후 가장 오래 커피를 쉬었다. 아직 마음이 헛헛하다. 커피 생각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루이보스티를 우려서 얼음 피쳐에 가득 담아 커피 마시듯 마신다. 원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담던 피쳐다. 목구멍이 뻐근하게 아프고 잔기침이 나던 것이 나아졌다. 위통도 많이 줄었다 (혹시 안 좋은 병에 걸려도 내가 커피를 끊지 못한 탓이라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의사 선생님들의 말을 실천하게 되어 다행이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그분의 충고를 받아들이길 잘했다. 이제 주위 사람들에게 '커피 끊었어요.' 말해야지. 나는 커피 안 마시는 사람이라고 못 박아야겠다. 카페인의 속박에서 벗어나, 커피를 안 마실 자유를 누릴 거야!


나는 이제 커피와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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