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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Jun 15. 2021

외할아버지와 뉴스데스크

우리가 감사허지






 살아계셨다면 100쯤 되셨을 외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유순하고 너그럽고 말이 없는 분이셨다. 성격 급한 외할머니가 바르르 역정을 내도,  한마디 되받아치시는   적이 없다. 방학이면 외갓집으로 모이는 손주들을 (우렁각시처럼) 조용하고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시는지 분명히   있었다.


 연년생 동생을 본 나는 일찍이 엄마 젖을 떼고, 외갓집에 한참씩 가 있곤 했단다. 사글세 단칸방 살이 하는 딸네가 안타까우셨으리라. 외할머니는 농사로 바쁜 틈틈이 충청도와 서울을 오가셨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자주 다닌 듯하고.


 어린이가 되어서도 방학마다 갔다. 외갓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앉으면, 외할아버지는 이만큼 자란 나를 대견하게 바라보신다. 그리고 맨 처음 엄마를 떨어져 왔던 때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첫돌은 지났을 텐데, 벽을 잡고 겨우 서는 아기였나 보다. 외갓집 미닫이문에 달린 잠금고리를 손으로 잡아보려고 까치발을 한다. 아무리 손을 뻗쳐도 닿을락 말락. 나는 개월 수에 비해 작고 약했다. 모가지가 가늘가늘 힘없이 비실거렸다. 쌀을 갈아 물을 붓고 말갛게 끓여 계속 먹이셨다고 했다. 어린애 얼굴에 점점 살이 오르고 팔다리에 힘이 생긴다. 그렇게 한 달쯤 되니, 마침내 발돋움 없이도 고리 끝을 움켜잡더라는 게 이야기의 절정이자 결말이다.

 나를 옆에 앉히고 두 분이서 테이프 재생하듯 읊으셨다. 기억을 차곡차곡 맞춰가며 말이다. 잠금고리를 '딱' 잡는 장면은 매번 뭉클했다. 미닫이 문을 바라보며 두런거리던 충청도 사투리, 장판 냄새와 요란한 벽지 무늬까지 기억에 선명하다.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없다. 다른 이모들 집도 마찬가지다. 농사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신질환을 앓는 막내 이모를 혼자 집에 둘 수  없으니 더 그러셨다. 외손주들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셨다. 얼마나 궁금하고 보고 싶으셨을까. 외부 행사(?)를 마치면 모두 외갓집으로 몰려갔다가 헤어지곤 했다.


 외할아버지는 수전증(手顫症:손이 떨리는 증세)이 있으셨다. 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언제나 옆으로 흔들거렸다. 국물이 흐르고 반찬이 흩어지는 걸 쳐다보면 할아버지가 민망하실까 봐, 애써 안 보는 척했다.




 외갓집 동네는 온통 황토 세상이다. 집도 물건도 사람도 붉은 흙물이 들어 있다. 놀다 놀다 심심해지면, 우리는 저 멀리 밭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할 아 버 지~~!!"


 목소리를 알아채고 번쩍 손을 들어주신다. 할아버지가 계신 곳을 향해 밭길을 나선다.


 밭에서 뽑은 잡초를 흔들어 흙을 털어내고 한쪽으로 던져놓는 일이 재밌어 보인다. 도와드리겠다고 조른다. 돕는 게 돕는 게 아닐 텐데도, 호미를 내주신다. 야호. 할아버지를 따라 밭을 매보자. 쪼그려 앉은 자세로 자리를 이동하며 잡초를 뽑는 게 쉽지 않다. 금방 땀이 나고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다. 재미가 없다. 밭 한 구석으로 옮겨 앉아 자연관찰을 시작한다.


 "우리는 이제 갈게요."

 옷이랑 신발에 흙이 또 잔뜩 묻었다. 손빨래하실 할머니 생각을 했을 리 없다. 밭에 여기저기 엉덩이 자국을 남기고 엉덩이에는 밭 자국을 찍은 채 다시 붉은 길 위를 오른다. 신발이 자석처럼 진흙을 끌어모아 걸을수록 발이 무겁다. 대문에 들어서니, 할머니가 이노무시키들! 지청구를 하신다.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할아버지가 닦아놓은 신발이 마루 아래에 놓여있었다.


 태어난 해(띠)와 계절, 출생 시각과 태몽을 조합한 외할머니 제작 나의 탄생설화(!)가 있다. 그것이 재생되면 할아버지 추임새도 시작이다. 할머니 말대로라면, 나는 예사로운 아이가 아니다.

 울 애기는 말도 참 잘하지. 여기 얘, 글 써놓은 것 좀 봐유. 춤도 찰 추구, 노래도 잘 허구! 흐흐흐 정말 그렇게 보이나요? 슬쩍 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깜빡 잊었었다 나의 영재성. 천 번 만 번 잘 되리라 예견된 미래. 외가에서만 선명해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어깨가 솟아올랐다.

 

 외할아버지는 언제나 없는 듯 계신 분이었다. 아무도 그분을 어려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아무리 퉁명스레 타박을 해도, 서운하거나 화난 기색이 없으셨다. 새벽부터 온종일 논밭에 나가, 평생 소리 없이 일만 하셨다. 온화한 성품은 가을 햇살 같고, 수더분한 말씨는 선선한 바람 같았다. 말없이 격려하고 조용히 지켜보시는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받았다.






 뉴스를 보시는 할아버지 옆에 엎드려 방학 일기를 펼쳤다. 또박또박 내 글씨를 잘 보실 수 있도록 적당한 위치를 잡는 건 기본이다. 방아깨비 잡고, 땡구리 따먹은 얘기는 다 써버렸는데 어쩌지. 그날이 그날인 시골 일상이라 글감이 없다. 괜히 뉴스데스크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오마나, 흉악스러운 범죄 소식이다. 할머니는 저런 것들은 총살을 시켜야 한다며 흥분하셨다. 길고 지루한 뉴스가 드디어 끝나나 보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뉴스 앵커가 인사를 하면, 외할아버지는 TV를 향해 얼른 대답하셨다.


"우리가 감사허지."

 


 외할아버지는 참, 좋은 분이셨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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