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성인 아토피안이었습니다
(31-40세까지 극심한 아토피 피부염과 함께 살았던 경험담입니다. 어떤 이유로 증상이 멈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 지난 시절의 고통을 떠올리며 적었습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어떻게 사람 피부가 이렇게 될 수 있지? 하루 만에 어제와 다른 내가 되어 있었다. 온몸이 붉게 부풀어 오른 염증으로 덮여, 너무 가렵고 쓰라렸다. 결혼한 다음 해(2006) 추석 연휴 기간이었다.
어릴 때 태열이 있었고, 가려움증 때문에 피부과에 종종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피부가 무섭게 된 것은 처음이다. 겁이 나고, 어리둥절했다. 살면서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중에서 얼굴이 제일 심했다. 괜찮아지겠지 며칠을 참다가, 큰 병원 아토피클리닉을 찾아가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했다. 먼지, 동물 털, 토마토, 땅콩, 쌀...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많은 원인들 중,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었다. 검사 결과, 내 몸에 반응을 일으키는 알레르기 원인은 특별한 게 없었다. 처음 듣는 이름의 곡식 몇 가지뿐.
얼굴은 가장 눈에 띄는 곳이다 보니, 아픈 고통도 있지만 마음고생이 컸다. 벽에 걸어 쓰는 선풍기 모양 온열기가 있다. 내 얼굴이 그 온열기가 된 것 같았다. 검붉은색으로 달아올라, 뜨끈한 열감이 사계절 내내 잦아들지를 않았다. 피부가 계속 벗겨지는 듯한 하얀 각질들이 색소침착된 피부를 덮고 있었다. 도저히 밖에 다닐 수가 없는 지경이다. 보기도 영 이상하지만, 햇빛이나 꽃가루 같은 것에 심하게 반응을 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간다.
살랑이는 바람도 옷깃도 머리카락도 미치도록 얼굴을 간지럽혔다. 샴푸나 치약도 자극이 되었다. 세제를 사용해 욕실청소를 하고 나면, 온몸에 가려움증이 솟구쳤다.
눈썹이 모두 빠졌다. 입가가 갈라지고 터져서 밥을 먹을 때, 입을 살짝만 벌려야했다. 자고 일어나면 진물 때문에 눈꺼풀이 붙어서 뜰 수가 없다. 베개에 진물이 묻으니까, 베개에 천을 깔고 잤다. 아침에 내 얼굴에서 천을 떼내는 시간이 너무 싫었다.
피부가 바삭바삭하게 얇아지고 가뭄 때 논바닥처럼 갈라져, 그 사이로 진물이 나고 피가 났다. 실컷 두드려맞는 사람의 얼굴 같았다. 긁지 않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었다. 살살 비비거나 두드리는 걸로 대신하려고 노력했고, 기름진 보습제를 잔뜩 바른 얼굴은 늘 번쩍였다. 넓은 머리띠로 머리카락을 남김없이 쓸어 올려야 했다. (증상이 심했지만, 나을 거라는 기대와 바람이 있었다. 직장에서 계속 일 해주길 바랐고, 나도 수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 상태로 몇 년 간 일을 계속했다.)
'얼굴이 왜 그러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 아이들과 외출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머뭇거림이 있다. 정수기 관리나 가스 점검하러 집에 방문하시는 분, 경비아저씨를 대해야 한다. 놀이터, 병원, 마트 계산대와 엘리베이터, 카페, 식당에서도 모르는 누군가의 놀라는 표정을 견뎌야 한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편하게 눈을 못 마주친다.
밤에도 낮에도 아프고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간지러움과 가려움으로 온종일 소름이 끼친다. 끊임없이 소름이 끼치는 증상은 나를 아주 무력하게 했다. 이 피부과 저 한의원에서 받은 처방대로 안 해 본 것이 없다. 주위에서 이것저것 바르고 먹으라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지킬 것도 많고, 피해야할 금기도 수두룩했다. 아토피가 나를 다스리려고 들었다. 병이 생긴 것도 낫지 않는 것도 모두 내 탓 같았다.
병이 길어지니, 주위의 도움이나 걱정하는 말들이 부담되기 시작했다. 챙겨주는 선의가 감사한 한 편, 스트레스가 되었다. 마치 나에게' 왜 아직도 아프고 있어. 네가 노력을 안 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얼마나 힘든데, 더 노력하고 애쓰라니 화가 나고 힘이 빠진다. 몸의 고통이 마음의 병으로 번진 것이다. 어떤 걱정도 관심도 다 싫어졌다. 외출이 하기가 너무 싫었고, 누구와 만날 약속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 병으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나라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하는 말들.. 들을 때마다 언짢았다. 교회에 갈 때와 출근할 때 말고는, 되도록 사람과 마주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나 사람을 대하려면 위축되고, 방어적인 상태가 되기 때문에 되도록 그런 상황을 피했다.
가려움으로 밤새 잠을 못 자니, 낮에는 늘 피곤했다. 아무거나 먹을 수 없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내가 뭔가를 먹으려고 하면, '이런 거 막 먹어도 돼?' 하는 걱정을 듣곤 했다. 마음이 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말에 기분이 상했다. 걱정해주는 한 마디가 본의 아니게 환자를 상심하게 할 수도 있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와중에, 세 아이를 낳고 키웠다.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나를 위한 음식을 따로 할 여력이 없었다. 잘 자지도 먹지도 못 하니 체력이 떨어지고, 면역력도 떨어졌다. 아토피 때문에 아토피가 심해지는 악순환.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록, 중증 아토피에서 요만큼도 벗어나지 못했다. 치료해보려고 발버둥 치느라 힘만 들고, 어떤 호전도 없었다.
자살을 선택하고만 아토피안의 소식을 뉴스로 대할 때면 그 심정이 짜릿하게 내 마음을 타고 들어왔다. 어떻게 이렇게 계속 살지?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지? 치료제도 없고 노력을 해도 아무 소용 없잖아. 눈물이 나오면 울면 되고, 기도가 터지면 쏟아낼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만성질환을 앓는다는 건 참 고단한 일이다. 병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보려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다.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혹시라도 낫는 건가 기대를 하다가, 다시 심해지면 몸도 마음도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는 고통이다. 이 과정의 반복 되다 보면, 환자는 결국 지쳐버린다.
10년쯤 되니, 자포자기 상태가 돼버렸다. 더이상 조심 하고 싶지 않아졌다. 피부관리나 메이크업 같은 건 상상도 못 할 일. 나는 오직, 그만 아프고 싶었다. 아토피라는 단어가 정말 지긋지긋했다.
결국, ‘나을 생각을 안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더 이상 어떤 노력도 안 하기로 했다. 아프든 가렵든 피부가 사는 날까지 그냥 이렇게 살자 싶었다. 아토피랑 어깨동무를 하고 사이좋게 지내보자 마음을 먹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속이 편해졌다. 기약없이 참고 견디는 게 아니니까 할 만했다.
누군가 나의 (아토피) 안부를 물으면 그냥 '좋아지고 있습니다'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걱정하는 분들에 대한 감사의 의미였고, 하나님 들으시라는 간절한 기도였다.
(아토피 이야기는 몇 날 며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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