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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사르 Aug 28. 2024

공공기관 퇴사하는 이야기

입사는 어렵고, 퇴사는 더 어렵다.

이별 중에 이렇게 속시원한 이별이 또 있을까.

집 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할 만큼 기분 좋은 이별,

바로 회사와의 이별이다.     


아주 오랜 기간 생각했던 일이다. 

본부장이 술자리에서 나와 다른 여직원들의 몸을 쓰다듬을 때부터. 팀장이 내게 무관심하고 적대적이라고 느낄 때부터. 이 직장에서 해볼 만큼 해보고, 떠나겠다. 그렇게 결심했다.

그리고 팀장이 두 차례 바뀌면서도 상황은 어딘가 비슷했다.


두 번째 팀장은 퇴사자 업무를 팀원끼리 알아서 분담하게 한 뒤, 결국 고유 업무와 퇴사자 업무까지 떠맡게 된 내게 아무런 말도 없었고, 오히려 본인 체면과 욕심을 지키기 위해 추가 업무를 지시하기에 급했다. 

세 번째 팀장 역시 내게 직원들이 기피하는 특정 업무를 나를 포함한 2인에게 부여하면서(다른 1인도 해당 경험이 있다.), 나만 들들 볶았고, 사업 전반에 있어 내게 의존하려 들면서도 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실수가 있으면 기분 내키는 대로 짜증과 성질을 부려댔다. 이렇게 2년간 이 곳이 회사인지 학교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다양한 업무들을 오롯이 혼자 이끌어 가면서 앞으로의 내 미래도 얼추 그려지자 더 늦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공개 이별을 선언하자, 어수선한 뒷이야기가 따랐다. 유명인들의 이별에는 여러 가지 추측성 이별 사유가 거론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추측성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 관심을 받아본 적이 있을까. 물론 그 관심이란 것이 오로지 나의 퇴사 사유에 꽂혀있을 뿐이란 게 좀 심심하긴 하지만.    

 

한 팀에서 정직원들이 연이은 줄퇴사를 하자, 회사의 내부 소통망으로 이용되는 유명 어플인 OOOO가 들썩거렸다. 기관장은 무능하고, 해당 팀장은 자격 미달이라고 난리였다. 그 때문에 팀장은 나를 불편해하였다. 이전에 퇴사한 직원들의 퇴사 사유마저 팀 내부에 있음을, 내가 확정 지은 셈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팀장은 동료라 믿었던 이들에게 이래저래 후두려 맞자, 결국 내게 아쉬운 점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완성하기 위한 비난 대상으로 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던가 말던가, 본인 역시 직원들의 생계수단을 빼앗은 사람으로는 ‘아직’ 거론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할 것이므로, 더는 그의 기분을 맞춰주지 않았다.     


사실, 퇴사에 대해서는 꽤 오랜 기간 고민을 했었다.

그 퇴사에 대한 트리거를 당긴 게 지금의 팀장일 뿐, 결국 퇴사는 시간 문제였다.

그렇다면, 퇴사를 고민하고 결정하게 된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1. 중요 의사결정이 신입직원에 의해 이루진다. 수억~수십억에 이르는 사업비를 담당직원 1명이 운용할 경우, 그에 따르는 수십, 수백가지의 의사결정에 팀장이 간여할 여력과 경험이 없다. 따라서 나와 같은 신입직원이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을 끌고 간다. 사업의 전문성을 가진 핵심 인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2. 회사의 주요 사업이 3년차 미만 직원들에게 몰려 있다. 고연차 직원들에겐 비교적 수월한 사업, 인사, 시설관리 등의 업무를 부여한다. 따라서 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한 저연차 직원들에게 기획과 선택, 결정, 책임이 필요한 일들이 과도하게 주어진다. 신입 직원들의 부족한 사업관리 경험으로 인해 겨우 겨우 사업이 마무리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후 성과 등에 대한 환류 과정의 결여로 지속 사업의 질이 저해된다.


3. 회사의 주요 사업을 담당하는 직원 중 비정규직이 구성원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담당자의 근로 계약 기간이 만료될 경우, 해당 사업의 업무 프로세스, 인적 네트워크 등은 zero base에서 다시 시작한다. -> 해당 분야 관련 노하우, 지식이 축적될 수 없는 구조가 고착된다.


4. 여초 회사의 분위기가 마치 학교 분위기와 비슷하여 나와 맞지 않았다. 입으로 일해도 애교를 부리면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면 괜찮은 것이고, 어떤 소문이든지 놀라울 정도의 속도로 확산됐으며 자기 입맛에 절여진 뒷담화는 일상이다. 이슈가 생기면 요란을 떨면서 팀장, 직원 할 것 없이 다같이 심각해진다. (물론 어느 경우에서건 해결되지 않는 사고란 없음에도 그렇다.) 


퇴사 고민의 시작은 상위 보직자의 성추행, 무관심 등 개인적인 이유에서였으나, 그 이후의 상황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 개인적 사유가 조직의 건재함과 아주 무관하지는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서로에 대해 견제할 필요도 없고, 좋은 게 좋은 거고, 일을 하지 않아도 정년까지 살아 남을 수 있는 둥글함을 가진 조직이다. 그렇지만,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 본연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선 둥글기도 하지만 칼날같이 예리한 부분도 있어야 할 것이다.


내게 왜 퇴사를 하는지, 그 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지 묻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물론 낱낱이 다 말하진 않았다. 이별하기로 결심했으면, 그대로 떠나면 그만이지 무슨 말들을 구구절절 덧붙인단 말인가. 

우리 다시 만날 거야? 다시 돌아갈 거야?      


그렇다고 아주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슬쩍 흘렸다고나 할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논란만 만들고 퇴사한 사람이 되고 만다. 논란이 큰 만큼, 그 반동으로 내가 문제 직원이 될 수도 있다. 내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을 선에서, 저격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을 데려다가 다시 앉혀서 퇴사 사유를 뭉뚱그려 전파력이 있는 일부에게만 전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완성해 줄 다른 타자들만 기다리면 된다.                    




떠나기 전, 회사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쫓기듯 해야 쓰겠는가. 한명 한명, 찾아가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마무리했다. 그동안 다 밉기만 했었는데, 어쩐지 집으로 오는 길엔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이별이었다. 일과의 이별, 그리고 사람과의 이별. 


마음같아선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고, 다른 직원들처럼 참 이 회사 거지같았다는 걸 온몸으로 티내며 도망치고 싶었으나, 꾹 참고 일도, 사람도 잘 마무리 하려 노력했다. 그게 내가 이 회사에서 그간 힘들어 했던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고, 깊이 패인 내면의 상처보다 더 단단해지겠다는 다짐과도 같았다. 


물론, 아름답기만한 이별은 없다.

앞으로의 생계를 걱정해야하니까.


그럼에도, 요즘엔 입맛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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