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이야기
나는 하늘 보는 걸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창밖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사춘기여서 그랬던 걸까? 그날은 하늘이 마음이 시리도록 파랗고,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예쁜 날이었다. 게다가 나는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에 달려있던 초록빛 나뭇잎들은 햇살에 어찌나 반짝반짝 빛이 나는지! 공부를 하지 않고 한참 동안 그 나뭇잎들이 햇살과 바람에 반짝이며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자주 하늘을 본다.
일주일 전, 우리 가족과 친구네 부부와 캐리비안 베이에 물놀이를 하러 갔다.
아이는 계속 물놀이를 하고, 나는 잠깐 앉아서 쉬었는데 하늘을 보니 또 하늘이 어찌나 예쁜지!
그날은 방수커버를 가져오지 않았는데도 예쁜 하늘을 간직하고 싶어 핸드폰을 꺼내와 하늘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사진을 보면서 다시 보니 구름 사이 숨어 있는 하트가 보인다.
90도를 돌리니 더 잘 보이는 하트!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관점을 바꾸면 사랑이 된다."라는.
관점에 대해 생각하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다.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옛날에 살던 집에서 층간소음 이야기이다.
우리는 1층에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2층에서 밤 10시에도, 심지어 새벽에도 아이가 뛰는 소리가 났다. 천장이 쿵쿵거리면서 내려앉을 정도의 소리가 나자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정말 이건 너무 심하다 싶어서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남편에게도 직접 찾아갈지, 아니면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할지 상의를 했을 정도이다.
그런 고민을 하지만 말은 못 하고 있던 중, 시어머니가 잠깐 올라오셨다.
며칠 지내시던 중 내가 퇴근하자 하시는 말씀,
"얘야, 우리 집 위층에 아주 아픈 아이가 사는 것 같더라. 내가 직접 봤다. 거동이 많이 불편하고 지체장애, 지능장애도 있더라. 얼마나 힘들꼬... "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현듯 그 아이를 본 기억이 났다. 어느 날 집에 오는데 집 앞에 있는 계단으로 그 아이가 올라가는 걸 본 기억이 불현듯 지나간다. 그때는 그 아이가 어디 사는지, 우리 집 위에 사는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냥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몸이 불편한 아이가 우리 집 위층에 산다는 걸 깨닫고 나니 좀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도 전혀 거슬리지가 않았다. 소리가 나도 이해하는 마음이 되었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이해와 사랑의 마음이 든 것이다. 참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는 소리가 나도 크게 들리지도 않는다.
두 번째는 진료를 받던 환자분의 이야기이다.
나는 친절한 편에 속하는 의사이지만 환자가 너무 혈압이나 혈당이 관리가 안되면 아주 가끔 길게 잔소리를 하곤 한다. 예를 들어 고혈압 환자인데 조절이 안되면 약물을 조절하기 전에 식습관이 너무 짜지는 않은지, 술이나 담배, 운동습관은 어떤지, 체중이 늘었는지 등을 더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면담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영향이 큰 것들이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도 생활습관이 중요한데 조절이 안 되는 것은 이분들이 더하다. 혈당조절을 하지 않아 증상이 있는데도 식사조절을 안 하는 것이다. 입맛이 없다며 하루 종일 과일만 먹거나, 아이스크림, 과자 등을 먹으며 혈당이 300을 넘는데도 못 먹게 하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분도 있다.
어느 날 혈당이 나빠져온 환자가 있었는데 환자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데 환자분이 말씀하신다.
"사실 사별한 지 한 달이 되었어요. 선생님한테 말해야 될 것 같아서 알려드려요."
그 말을 들으니 잔소리할 마음이 사라진다. 이분에게는 의사의 잔소리나 주사제 써야될 수도 있다는 협박이나, 나빠졌다는 통보와 같은 말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다.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고, 충분히 위로받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도 몸도 이겨낼 힘이 생기는 것이기에.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위로를 말을 건네본다.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하신다.
때로는 너무 의사 말을 안 듣고 약만 그대로 타서 가려는 분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는데 그 사람의 배경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더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기에. 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달라지기에.
아이가 평소에 말을 안 들으면 화가 나지만 열이 나고 사경을 헤매는데 평소와 같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아이도 엄마 말을 들을 수도 없다. 그때는 말을 안 들어도 이해하게 된다.
처음 의사가 되었을 때는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느니 그냥 죽을래."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보면 그럼 왜 병원 다니시는지 화가 났었다. 그런데 이제는
"선생님 저는 살고 싶어요. 힘들어요."라는 말로 번역해서 들리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환자들을 만나며 환자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나도 매일매일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