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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Aug 15. 2022

환자의 할 일




© junojo, 출처 Unsplash




출근을 하는데 얼마 전 진료한 환자분 생각이 났다.

당뇨병 치료를 하는 여자 환자분인데 그분을 만나는 날은 단단한 마음의 각오가 필요하달까?

보통 혈당을 체크하고, 증상은 없는지, 약은 잘 복용하는지 꼭 봐야 할 것들을 먼저 확인하고,

생활습관은 어떤지 보고 필요한 교육을 하게 되는 것이 진료의 과정이다. 필요한 경우 추가 검사를 하기도 한다. 


이분은 올 때마다 나에게 새로운 문제를 던져 주신다. 

"고구마 한 박스 사서 매일 먹어요. 너무 맛있어. 아침, 점심, 저녁 다 고구마만 먹을 때도 많아."

"과일, 과자, 아이스크림, 간식 없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 차라리 죽고 말지."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요? 난 완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나 좋아진 거 아니었어? 그런 줄 알고 약 안 먹었지. 증상이 없길래 좋은 줄 알고 이틀에 한번 삼일에 한 번만 약 먹었어요."

이야기하다 보면 흔히 말하는 고구마를 100개 먹은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진료를 마칠 즈음 다시 잘해보겠다고 하고 돌아가시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나 또한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 고통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분의 악화된 검사 결과를 보면 다시 허망하면서도 '어쩌면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지키지 않는 걸까, 변하지 않는 걸까?'실망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때로는 변화 없는 모습에 슬금슬금 화가 나기도 한다.


또 한 분의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할머니보다 더 심하신 분이다. 숨 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청진기를 대고 폐청진을 하니 전형적인 만성 폐쇄성 폐질환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x-ray결과도 좋지 않아 폐기능 검사도 해야 하고, CT도 찍어야 해서 이 병원에는 없으니 큰 병원을 가라고 하는데 귀찮으니 제발 여기서 해결해달라고 하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환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환자가 할 일은 약을 잘 먹고, 치료를 잘 받아서 좋아지는 일뿐이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에게 따듯한 말을 한다든지, 예의 바른 사람이 된다는지 이런 것이 아니다. 물론 예의 바른 분이면 더 좋겠지만 그건 사람의 일이지 환자의 일은 아니다. 

"저한테 잘해주지 않으셔도 되니 약만 제발 잘 드세요!"

"화를 내셔도 되니 제발 좋아지세요!"

이런 마음의 외침이 들린다. 

그만큼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환자가 좋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환자의 결과에 따라 웃고 운다.

환자가 좋아지면 어찌나 기분 좋은지 집에 가서 환자 좋아진 이야기를 자랑스레 하기도 한다. 마치 내 일 같다. 


부모의 마음은 무엇일까? 

아이가 생기면 부모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돈을 벌고, 아이를 사랑하고 훈육하고, 숙제도 시키고 운동도 시키고, 공부도 시킨다. 잘 양육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프지 않을 때의 아이는 아이에게 주어진 일 잘 먹고, 잘 자고, 친구들과 잘 놀고, 학교에 잘 가고 숙제도 하는 것 등이 아이의 일이 된다. 


아이가 아프다는 진단을 받으면 학교에 가고 숙제를 잘하는 일상적인 일들이 욕심이 된다.  설사 평범한 사람들보다 욕심이 많았던 부모라 해도 다 내려놓고 

"건강하기만 해 다오, 살아있기만 해 다오."

라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 삶이다. 아이가 중병에 걸렸는데 공부하라고 말할 부모는 아무도 없다.

그럴 때는 아이의 역할은 약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주는 것뿐이다. 존재 자체가 아이의 할 일이 된다. 부모는 그 아이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만이 역할로 남는다. 


무슨 마음인지는 몰라도 오늘따라 그런 부모의 마음이 된다. 결과가 좋은 환자는 좀 더 많은 욕심을 부리고, 결과가 좋지 않고 약도 안 먹는 환자는 마음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약 잘 먹는건만이라도 제발 잘 해달라고...

각각 맡은 일을 우리 잘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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