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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이 Nov 18. 2022

해외에서 산다는 것

아주 사소한 것도 어려울 수 있다.



아일랜드에 나와 산지 벌써 1년이 다가온다.

1년동안 브런치를 생각도 못할 만큼 바빴다는 건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래놓고 이제야 돌아온 건 약간 숨 돌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듣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아서.


1년 간의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이건 차근차근 풀어가기로 하고. 오늘은 내 아일랜드 첫 한 달을 돌아보려고 한다. 마냥 기대에 들떠 설레지만은 않았던 시간이기에.



결혼이민.

타향살이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아주 달콤한 말이 될 수 있겠다.

인생의 과업 하나를 해결함과 동시에 해외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하나가 생기는 셈이니 듣기만 해도 그 얼마나 이득인가!


나는 종종 "남편 잘 만나서 편하게 유럽생활하고, 좋겠다."는 말을 듣곤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 나 역시 이게 좋은 점이 될 수 있다고 인정은 하지만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울컥하는 건,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나의 시간이 무시당하는 기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더블린에 도착하니 날 기다리는 건 방 1개, 거실 하나짜리 작은 집.

더블린은 집세가 아주 비싸다. 열 걸음만 걸으면 집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에, 오래되어 벽과 천장에는 실금이 가 있는 우리 집. 파이프가 낡아 수시로 변기와 배수구, 씽크대가 막히는 우리 집.

우리 집의 월세는 한화로 약 170만원(세금 포함).


낡은 집은 곰팡이가 가득한데다 물도 달라서 도착한 첫 달에 장염을 크게 앓았고 처음으로 녹색 변을 보았다.

곰팡이탓에 감기를 달고 산 건 그냥 사소한 일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1. 택배 서비스


더블린에서 처음으로 해야 했던 일은 한국에서 보낸 택배 찾아오기.내 온갖 짐이 든 큰 택배는 중간에 분실되었다가 3개월만에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우리집 앞으로 배송해주는 서비스에 익숙했던 내게 우편이 하나 왔다.

-서비스 센터에 택배를 보관하니 찾으러 오시오.


남편한테 보여주니 가서 찾아와야 한단다. 별 수 없다. 갔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서비스센터를.




그리고 만난 택배...

보다시피 여기저기 다 찢어지고 뜯어져있다.

분실된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박스.

무게는 약 20kg. 이걸 들고 어떻게 집에 가나. 남편과 망연자실 서있다가 결국 택시를 잡아 탔다.



2. 팁 문화


그리고 택시 기사는 친절히 우리 짐 올리고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고마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집에 다와갈 무렵, 남편이 난데없이 휴대폰을 슥 내민다. 보니 택시 어플이었다.

그 화면 한가운데 떠 있는 건, '당신의 팁을 고르시오.'

순서대로 5유로, 10유로, 20유로...


팁은 안줘도 세상이 멸망하는 건 아니지만 주는게 일반적이란다. 목적지까지 거리가 짧은데도 와줬고, 짐 옮기는 것도 도와줬으니 10유로를 주겠다는 이 남자.

10유로면 약 13500원.... 왓!!???



3. 사소한 것도 어렵다.


더블린 버스는 대부분 2층 버스. 2층 맨 앞자리에서 밖을 보는 건 꽤나 즐겁다.


지금 생각해보면 더블린 정착 초기, 가장 어려웠던 일이 버스타기, 우체국가기.


한국에서 우체국 업무를 본다면,

-우체국에 간다.

-번호표를 뽑는다.

-번호가 뜨면 창구에 가서 우편물을 접수한다.

가 되겠다.


여기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여기의 절차를 단 하나도 모른다는 게 어려웠다.

우체국 앞에서 심호흡을 수십번 했다.

'들어가면 서류를 부치러 왔다고 해야지. 얼마나 걸릴지도 물어보고, 빨리 가는게 있는지도...'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내 생각은 와장창 깨졌다.

당시에는 코로나로 모두들 마스크를 착용했으며, 창구마다 유리벽이 있어 직원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버벅대며 우편물을 보내놓고도 다 끝난건지, 제대로 한 건지 모르고 멍청하게 돌아와 남편에게 "이렇게 했는데 맞아?" 하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날 우체국도 하나 못 가는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는 잊히지 않는다.



버스타기는 더 어려운 미션.

더블린에는 버스 정류장이 아주 많다. 심지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도 많아 뭐가 내 정류장인지 헷갈리기 일쑤.

맞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버스를 타면 카드를 찍어야 하는데, 카드 탭핑 기기는 버스 안에 2개다. 하나는 기사님 앞, 하나는 들어가는 문 오른편.


내가 가는 거리가 정류장 10개 미만일 경우 목적지를 기사님께 말하고 기사님 앞 기기에 카드를 탭핑하면 거리만큼의 돈이 빠져나간다. 10개부터는 가격이 모두 동일하므로 오른편 기기에 카드를 탭핑하면 된다.


이 절차를 몰랐던 나는 처음 버스를 타고 우뚝 멈춰버렸다. 내 뒤로는 타려는 사람들이 여댓명이 더 있었다.

기사님께 물었다.

"카드 탭핑 어디에 하나요?"


기사님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말도 빠르고 억양도 강해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냥 여차저차 둘러보다 아무데나 카드를 찍었다. 그리고 2층 버스 윗칸에 올라와 밖을 보면서 멍하니 앉아있었다. 바보가 된 기분으로.





유럽에 산다는 건 때론 꽤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 낭만 이면에, 수많은 고군분투가 묻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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