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나날들 - 1
물리적인 중력의 힘은 간접적으로 그 실체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무언가 아래로 떨어지거나 무게감 있는 물체가 위에서 짓누르면 그 작용을 가능케 하는 힘이 있음을 추론하고 이름 붙이고 인식한다. 그러나 삶이라는 중력의 무게는 무섭도록 직접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추론이 막히고 이름 붙여 인식할 수 없다. 그 직접적 힘은 내부에서 발산되어 세계로 뻗어나간다.
자신을 주저앉히고 세계를 비틀어버리는 자기장의 칼날을 차분하게 주시하고 있으면 칼날의 재료를 짐작할 수가 있다. 유전된듯한 성격, 놓쳐버린 기회, 늦은 깨우침 등등. 이들의 혼종이 빈틈없이 촘촘히 작용하여 삶을 방향 짓는 틀을 만들었음을 알게 된다. 빗겨나갈 틈 없이 가로막힌 골목길에서 강풍이 불어댄다.
더듬거리며 생각에 잠겨본다. 방향이 다른 두 개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먼저 솜씨 좋은 누군가에 의해 손으로 직접 뜬 옷을 보면 들곤 했던 생각이다. 털실은 지나간 과거의 사건들이고, 큰 코바늘은 삶을 직조하는 힘이다. 코바늘로 털실을 어떻게 직조하느냐에 따라 털실은 현재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유전된 듯한 성격, 놓쳐버린 기회, 늦은 깨우침이라는 과거의 사건은 큰 코바늘의 직조하는 힘에 의하여 자신만을 독특함을 드러내며 재해석되고 재창조될 것이다.
다른 편에서 내미는 생각은 “칼의 노래”의 첫 시작 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라는 문장과 함께 한다. ‘버려진 섬’과 ‘꽃’은 결국은 꽃은 피고 마는 환희도, 모든 것을 버려진 섬으로 뒤덮어버리는 비극도 아니다. ‘버려진 섬’과 ‘꽃’은 같은 위치와 중량감을 가지고 존재한다. 놓쳐버렸기에 잡은 기회들, 늦게 깨우쳤기에 다가오는 절실함, 쌍을 이루는 이들은 하나만 오롯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두 방향의 생각은 상황에 따라 또는 우연한 작은 깨침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늘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게 삶의 나날을 지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