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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Nov 11. 2020

서울에서 호구조사 하는 법: “댁이 어디세요?”

“댁이 어디세요?”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댁이 어디세요?”라는 말이 친절한 궁금증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흔한 질문은 ‘당신은 어떤 출신 성분과 경제력은 가졌습니까?’로 들리는데, 어느새 필자도 이 질문을 통해 상대의 배경을 캐내고 멋대로 판단하고 있었다. 판단을 위한 다양한 기준에는 외모, 사회 및 조직 내 지위, 학벌, 경제력 등이 있겠지만서도.. 살아갈수록 경제력의 영향력이 점점 높아지는 씁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필자의 섣부른  판단은 괜시리 사회생활이라는 야생에서 적응하다 생긴 결과물일 뿐이라 둘러댄다.


직장, 차, 입고있는 옷 등을 제치고도 경제력 판단에 거주지가 일순위인 이유는 단순하다. 개천용은 없는 세상에 좋은 직장은 입에 풀칠할 뿐이고, 길에 치이는 게 외제차라 카푸어를 알아보기 힘들고, 명품 옷을 입은 사람도 같은 맥락이다. 외에도 다른 선택지들을 생각해봤을 때, 서울에서의 거주지는 집안, 경제력, 주변 인맥 등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력 판단 정확도가 높은 질문이다.



족보가 왜 필요해, 거주지가 다 말해주는데

지방에도 부유한 동네가 있지만 그 수가 많지 않고 동네 간의 차이도 크진 않은 편이다. 허나 서울에선 동네 하나에 많은 걸 내포하고 있다. 지방 사람에게 익숙한 압구정과 청담동은 물론이거니와, 생소한 동부 이촌동에 산다 하면 3대 전부터 부자란다. 박명수가 서래마을에 산다고 할 땐 무슨 시골 구석에 사는 줄 알았더니, 익숙한 브랜드지만 익숙하지 않은 금액의 아파트가 모여있다. 목동은 강남 3구는 아니지만 높은 교육열로 유명할 뿐더러 진입하기 절대 만만한 동네가 아니다. 강북도 빼놓을 수 없다. 진짜 부촌은 강북에 있으니까. 경기도는 열외냐고? 분당에서 정자동이면 또 말이 달라지지.



내 머릿속의 데이터

필자가 위의 정보들을 수집하는 데 네이버나 구글은 필요 없었다. 서울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 속에서 어울리며 자연스레 그들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고, 거주지인 x 축과 경제력인 y 축의 상관관계를 그릴 수 있었으니까. 특히, 2030 세대 중 학벌 좋고 능력 좋고 돈걱정 없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좋은 동네 출신 비율이 높았다. 일례로 유학생들이 있달까.


사회생활 10년 차, 갓 상경했던 대학시절보다 데이터 분석 능력은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다. 능력은 향상되는데 자존감은 떨어지고 있다는 건 함정.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을 거란 희망과 열정은 사그라진다.


(구태여 덧붙이자면 필자는 지방 출신이기에 서울 거주지라는 데이터 수집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럴수록 경제력과 배경을 알려고 하는 구체적 질문들이 더해지는데, 못난 자존심으로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



상경한 개천뱀은 오늘도 혼술을 한다

이런 데이터들이 쌓이면서, 개천용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퇴근길이 무겁다. 주말에 좋은 동네 사는 친구들과 소주를 기울이는 시간이 꺼려진다. 특히 필자를 포함한 주변은 결혼이 화두인 나이인데, 연인의 집안이 못산다는 이유로 이별을 택하는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들을 때마다, 심장에 못이 쿡쿡 박힌다.


"오빠는 진짜 재밌고 똑똑하고 나랑 잘 맞는데.. 나는 나랑 비슷한 사람 만나고 싶어. 오빠가 직장에서 벌어봤자 얼마나 벌겠냐. 나 지금 쓰는 것만큼 못쓰고 아등바등 살지는 못하겠어. 오빠는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데.. 미안하긴 하지만 연애만 하고 헤어질 생각이야."


“ㅇㅇ이는.. 미래로 생각했을 때 좀 그렇지. 일단 우리 부모님도 절대 반대할 거고 사실 나도 그래. 얼마 전에 고등학교 때 친구 생일파티에 갔는데 되게 괜찮은 애가 있는 거야. 얼굴도 괜찮고 걔도 서래마을 살더라고. 주변 친구들도 다 우리 동네니까 확실히 다 괜찮아.”


“청담동에서 자취한대. 집안이 청담동은 아닌 것 같으니까 혹시 소개팅에 부담 느끼진 말라고~ 우리 와이프도 예전 친구는 아니고 사회 친구라서 잘은 모르겠다네? 이런건 초반에 파악하는 게 좋긴하더라.”


"걔는 한남동 사는데, 걔 여자친구는 어디더라.. 아무튼 듣도보도 못한 데 살았어. 3년쯤 넘게 만나고 헤어졌지. 결혼은 또 다르잖아. 계속 연애만 하고 살 수도 없고."



로또 말곤 답이 없다

최근 복권 판매점에 붙어있는 홍보물에서 본 카피이다.


가끔 술김에 전화해서 볼멘소리를 하면, 억센 사투리로 고향 지인들이 해주는 말들이 있다.


"네 배경을 보고 싫다는 사람은 애초에 만날 가치가 없으니 기죽지 말아라."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 왜 자책하고 힘들어하냐."

"우울해할 시간에 잠 푹 자고 더 노력하면 좋은 일 생길 거다."


힘을 주려는 말인 건 아는데, 요즘 도통 힘이 나지를 않는다. 노력이나 열정보다 금수저가 사회적 성공에 미치는 영향력이 높다는 데이터 때문일까.


로또 말곤 답이 없다는데, 내가 이번 주에 산 로또는 왜 답이 없나.


그래도 로또밖에 없다니, 이번 주 토요일도 로또와의 설레는 썸을 기다리면서..


힘내자. 내일도 출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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