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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울싸람 Dec 08. 2020

그렇게 서울깍쟁이가 된다.

서울깍쟁이를 조심하라

친구와 노는 게 전부이던 시절 상경한 필자. 서울에 오기 전 가장 걱정됐던 건, 비싼 물가도 아닌 복잡한 지하철도 아닌 바로 '사람'이었다. 필자에게 서울 사람들은 상냥한 말투를 갖고 있지만 속을 알 수없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치사한 깍쟁이들이었다. 물론 논리적인 뒷받침이 있다거나, 경험의 축적에 의한 결론은 아니었다. 그냥 '서울깍쟁이를 조심하라'는 주변 말이 전부였을 뿐.



코베이려고 코 준다

방어태세를 갖추고 서울 사람들을 마주한 결과는 어땠을까. 맙소사! 정말 서울에는 깍쟁이들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수업을 같이 듣기 위한 친목이 대부분이라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기에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선의의 연락의 끝에는, 친구로서 보내는 시간이 아닌 항상 다른 목적이 있는듯했다.  


한날 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는 친구가 있었는데, 주변에선 막차가 끊긴다며 하나둘 자리를 뜨기 바빴다. 어디 혼자 둘 수도 없고, 나중에 놀랄 친구가 걱정되어 결국 자취를 하던 본인의 집으로 데려갔다. 글로는 모두 설명하기 힘든 뒤처리도 함께였기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희생이 100% 진심에서 우러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마음이 그다지 넓지 못한 필자는, 이 작은 사건으로 서울에서 남을 위해봤자 손해만 볼뿐이라는 경험이 추가됐다.



우리 친구 아이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걸 힘들어하는 타입은 아니었기에 서울 생활에 적응이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사소한 이야기라도 진심을 담아 대화하고 싶었던 건 고향 친구들밖에 없었다. 고향 친구들과의 통화는 척하면 척이었고 진심 어린 경청과 조언이 따랐다. 때로는 객관적이지 못한 필자 중심적 사고를 해주었기에 편향된 고향 친구들은 서울깍쟁이들 틈새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다. 서울말과 사투리라는 이중언어 능력이 향상될수록, 서울깍쟁이에 대한 불신은 커져갔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 불신이 다시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서울 생활 10년 차, 서울에서 알게 된 지인들을 알게 된지도 10년에 가깝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기분이 좋을 땐 언제고 짜증 날 땐 언제인지, 술을 마시면 어떤 술버릇이 나오는지, 사소한 연애사 등 알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알고 있다. 동시에 서로 잘 알아가고 이해하면서 주변인들의 진심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 실속만 챙길 것 같았던 사람들에게 기쁠 때는 진심으로 축하를 받고 힘들 때엔 힘을 받으며, 서울깍쟁이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보낸 시간과 신뢰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인들의 돈독함이 커지는 걸 경험하고 있기에.. 서울깍쟁이의 존재 여부 및 탄생 배경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서울깍쟁이가 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깍쟁이란 1) 이기적이고 인색한 사람 2) 아주 약빠른 사람이다. 즉, 서울깍쟁이는 지방 사람들보다 서울 사람이 이기적이고 인색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 그렇다면 왜 하필 서울일까? 한강에는 사람들을 깍쟁이로 만드는 물이라도 흐르는 걸까?


서울에는 약 1천만 명의 우리나라 1/5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큰 꿈을 안고 상경한 사람도 있다. 나고 자란 사람은 계속 남아있기 위해 치열해야 하고, 상경한 사람은 어떻게든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해야 한다. 비싼 물가와 집값을 감당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돈이란 게 쉽게 벌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이기적이고 독해진다. 따라서 서울을 직접 택한 사람들에게 이타심은 1순위가 될 수 없고, 그래도 순위권에 있던 이타심이 점점 밖으로 밀려난다. 이는 비단 서울뿐만이 아니며, 치열하게 사는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 깍쟁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 서울깍쟁이에게 돌을 던지랴? 그렇게 누구나 서울깍쟁이가 된다.


요즘은 깍쟁이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10년 전처럼 배신감을 느끼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는 깍쟁이들을 비난할만큼 떳떳하지 못해서일터.


그저 치열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타협적인 선택이라며,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며, 그렇게 서울깍쟁이가 되어버린 필자는 합리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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