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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우 Jun 25. 2024

음미하는 영화 보기

(봄날은 간다 &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요즘은 스마트폰, 스마트TV에서 버튼만 한번 누르면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이다. 넷플릭스, 웨이브, 디즈니 등 ott서비스는 수천 개의 콘텐츠를 입맛 따라 준비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취향을 고려해 추천되는 영화를 하나씩 보다 보면 퇴근 후 저녁 시간, 주말 휴식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 배우, 장르, 시대, 분위기의 영화는 신기할 정도로 추천 목록에 차고 넘친다. 검증된 스토리와 적절한 반전, 대중적인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는 마치 패스트푸드와 같이 모두에게 쉽고 빠르고 재밌다. 영화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영화가 자동 재생되는데 나의 경우 몇 분 사이 마치 다른 세계로 순식간에 점프를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영화가 온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급하게 이야기밖으로 쫓겨난 기분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잘 만든 영화를 단순히 보는 것 이상으로 잘 음미하고 여운을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 확고해진 요즘이다. 같은 음식도 꼭꼭 씹어 맛과 향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더 맛있지 않았던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마무리되면 영화는 온전히 끝난 것일까? 마지막 반전, 배우들의 마지막대사는 어떠한가?? 어떻게 정하든 결말을 확인했을 것이며, 영화에서 그다음 이야기는 없으므로 스토리를 파악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 어떤 영화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시점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영화의 경우 마지막 장면이 체 마무리가 되기도 전에 다음 영화로 넘어가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었던 영화가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영화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봄날은 간다’ 라는 영화를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유지태와 이영애 라는 한국의 대표 배우가 출연했으며 “라면 먹고 갈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와 같은 대사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조차 알고 있는 명대사로 남았다. 나의 경우는 서울에서 강릉까지 택시를 타고 이영애를 만나러 가는 유지태의 모습이 꽤나 쨍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영화이도 하다. 영화만큼 이나 유명한 것이 김윤아가 부른 ‘봄날은 간다’ 라는 동명의 ost일 것이다. 이 노래가 영화에서 언제 흘러나오는지 기억하는 분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ost가 영화의 어떤 장면에서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봄날의 간다’의 마지막 장면 즈음으로 가보자. 이별 후 계절이 지나고 흐드러지게 핀 벚꽃 나무 아래에서 유지태와 이영애가 짧은 재회를 한다. 이별이 왔음이 아닌 사랑이 떠나갔음을 그들이 만난 봄의 한가운데에서 맞이한다. 벚꽃잎은 무심하게 떨어지고 누가 남고 누가 떠나갔는지는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사항으로 남는다. 장면이 전환되고 청보리가 펼쳐진 들판에서 음향 작업을 하는 유지태의 모습,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다 웃음이 번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그제서야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노래가 시작된다. 가만히 앉아 노래를 들으면 사랑이 기어이 떠나갔음을 지는 꽃잎을 어쩔 수 없음을 누구보다 피부로 느끼게 된다. ‘봄날을 간다’의 엔딩크레딧을 보지 않았다면 온전히 영화를 음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뇌종양과 골수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친구의 이야기인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죽기 전에 바다를 보고야 말겠다는 그들의 여행은 유쾌하고 대책 없으며 온갖 요행들이 그들과 함께 한다. 어차피 죽는 마당에 라는 생각은 모든 것들은 다 사소하게 느껴지게 하고 경찰도 갱도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거짓말이나 강도 짓은 귀여운 정도로 보이며 분홍색 캐딜락도, 유치한 소원도 아무래도 좋다. 자동차는 바다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리고 그들은 기어이 바다에 도착한다. 바다는 푸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거친 파도와 흐린 하늘, 사나운 바다 앞에서 두 친구는 너무나도 작기만 하다. 목적지에 도착했음에도 그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고 말없이 바다를 바라보다 담배와 술을 각각 입에 문다. 이내 한 친구가 먼저 쓰러지면 남은 친구는 가만히 옆자리를 지키고 담담하게 바다를 끊임없이 바라본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가 흘러나오고 바다는 여전히 거칠다. 우리도 그저 바다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바다에서 하늘로 화면이 전환되고 유쾌한 척했던 여행에 대해, 죽음에 대해, 바다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영화 말미에 우리가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어떤 이야기가 남아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밥을 짓고 10분 정도 잠깐 뜸 들이는 시간만 가져도 밥맛이 훨씬 좋아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다 마무리 되더라도 잠깐 시간을 들여 영화를 음미하는데 써보는건 어떨까? 엔딩크레딧을 보며 영화의 감상을 정리하다 보면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있을 것이며,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사들이 있을 것이다. 감정의 울림을 주는 엔딩곡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덤이다. Ott 서비스에서 처럼  영화 말미에 다음 버튼을 누르기엔 훌륭한 영화가 너무 많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발견하지 못한, 지나쳤던 보석들이 오늘 나의 플레이 리스트에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빠르게 소비하기 보다는 온전히 즐기는 사람이 많아 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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