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우 Jun 24. 2024

글을 씁니다

글린이 비긴즈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마다 되뇌는 것들


● 글을 완성할 것

● 잘 쓰겠다는 생각은 잠시 미뤄둘 것

● 체면을 차리지 말 것




 글은 본래 기능으로 역할하지만 어디인지 모르게 고상한 구석이 있어 '글을 읽는 걸 좋아합니다', '좋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같은 말은 어쩐지 낯 간지럽게 느껴진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글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게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가 되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곤 했지만 정작 나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글을 시작조차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잘해야지 라는 마음은 가끔 어떤 장벽들을 만들게 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곤 한다.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끙끙거려본 사람은 글을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올봄 평소 독서모임을 통해 알던 지인들과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2주에 한편 본인이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리뷰하기. 2주라는 시간도 넉넉해 보이고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남들에게 보여지는 글을 쓴다는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역시나 ‘좋은 글’, ‘부끄럽지 않은 글’ 이 여지없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평소 글을 쓰지 않던 사람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요했는데, 어떤 주제를 써야 할까?? 어떤 문장으로 글을 구성해야 할까? 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은 순간들도 고민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어렵게 정한 주제도 한두 문단을 쓰다 지워버린 적이 여러 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 시간을 아깝게 날려 버리곤 했었다. 눈높이는 하늘 끝까지 올라가 있는데 정작 내가 쓰는 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쉽사리 글을 이어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글을 제출해야 하는 기한이 다가오자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는데, 좋든 싫든 글을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글들이 하나 둘 생기자 조금씩 글쓰기가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못난이 글이라도 일단 마무리를 하고 나면 자신감이 생긴다. 이상한 말 같지만 진짜다. 이게 비단 글쓰기 만에 국한된건 아닐 것이다.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경험은 언제나 우리를 성장시킨다.


 처음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땐 영화나 책 리뷰를 해보려고 했었다. 이야기의 재료를 구하기도 쉽고 나 스스로는 영화도 책도 제법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하지만 정작 마지막 순간엔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나 생각들을 풀어내는 경우들이 많았는데 서툴지만 글로 옮겨진 내 이야기가 퍽 좋았다. 유려한 문장이나 수준 높은 단어들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내 생각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었고 그런 점이 맘에 들었다. 때로는 생각한 이야기가 잘 써지기도 하고 때로는 아쉬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흐를 때도 있었지만 쓰여진 글을 보고 있으면 글을 쓸 당시 나의 생각이 여정처럼 남아 있었다.  ‘첫 문장을 참 많이도 고쳤었지’, ‘이 문장은 원래 마지막에 쓰려고 했는데 결국 여기 자리 잡았구나’, ‘이런 마무리를 하려고 했던건 아닌데 이것도 나쁘진 않아’ 이런 다양한 생각들이 내가 쓴 글의 애정으로 이어졌고 쌓인 애정은 다음글을 시작할 수 있게 나를 이끌어 줬다. 


 글을 전혀 쓰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정확한 주제를 가지고 정재된 형태의 글을 써본 적은 없었다. 이전까지 제일 자주 쓰던 글의 형태는 시였는데 일을 하다 잠깐잠깐, 여행을 가다 한 문장씩, 술을 먹다가 드문드문. 두서없이 쓴 글은 꽤나 읽기가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감정을 쏟아 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문장이 절제되지 않고 감정에 취한 사람마냥 갈지자를 그리곤 했다. 아마 시를 선택한건 긴 글을 쓸 자신은 없었고 감정을 올려두기 좋은 글의 형태였던 것이 컸던것 같다. 그에 반해 정리된 생각을 글의 형태로 남기는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는데 책을 읽을 때 쉽게 읽혔던 한 페이지가, 내 손으로 쓴 글에서는 한 문장 한 문장이 고비였다. 더군다나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게 된다고 생각하면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할까? 라는 고민이 생기는 지점들이 있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글쓰기의 흥미를 잃지 않기 위해선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단 쓰고 싶은 것들이 생길 때마다 최대한 써보자 라는게 현재의 생각이다. 감정에 매몰되지는 않되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내려 가고 싶다. 스스로를 검열하면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보단 조금 부끄러운 흑역사 한둘쯤 만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게 더 좋지 않으려나?


 뜻밖에 돋아난 의욕이 얼마나 자라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우선은 쓰고 싶은 글들을 하나씩 써 나가고 싶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 이더라도 완성된 글이 하나씩 늘어가다 보면 지금보다 글쓰기가 더 재밌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서투름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